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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티켓까지 끊어주려는 일본인 부녀

기사승인 2023.01.09  10: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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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5일의 일본 여행기는 5회로 마감하려 했다. 하지만 몇 개 글감은 그대로 묵히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면이 연상되는 대로 몇 개의 글을 더 써야 할 것 같다. 여행의 낙수(落穗) 성격이 될 것이다. 간사이(關西) 지역 여행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면서....(필자 주).

일본 여행 중 만난 친절한 사람들로 인해 감동 받은 적이 여러 번 있다. 그 중 아직도 그 여진이 진하게 남아 있는 것은 12월 27일 가가와기념관(賀川記念館) 갈 때 만난 사람들이다.

가가와기념관은 고베(神戶)에 있다. 우리가 묵고 있는 오사카 아시아토 호텔에서 고베까지는 전철로 1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이다. 구로몬시장(黑門市場)을 벗어나니 두 개의 지하철 출입구가 보였다.

첫 난관을 만난 것이다. 어느 출입구를 이용할 것인가? 두 개의 출입구가 서로 다른 전철일 수도 있다. 또 승강기가 딸린 출입구는 어느 곳인가? 폰에서 번역기(Papago)를 찾아 들었다.

물어보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몇 사람을 스쳐 보내고 드디어 한 사람을 잡고 물어보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젊은 여성이었다. 아버지는 시각장애인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すみません、神戸 賀川記念館に行きたいのですが、どの出入口を利用すればいいですか?"(죄송하지만 고베에 있는 가가와기념관을 가려고 하는데 어느 출입구를 이용해야 하지요?)

그 젊은 여성은 대뜸 "한국 분이세요?"하고 우리 말로 물었다. 좀 어눌한 억양에 아버지가 일본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것으로 볼 때 일본인임이 분명했다. 왼쪽 출입구를 가리키다가 20m쯤 떨어진 승강기 앞까지 직접 안내했다.

산등성이 하나를 넘은 듯했다.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고 승강기를 타려는 순간 그녀의 아버지가 표 끊는 데까지 안내를 해 드리라고 말했다. 승강기에 우리 넷만 타게 되었다. 우리는 금세 한 식구가 되었다.

한국어를 잘 하는 연유를 물었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택해 공부를 했다고 했다. 거기에 한동안 한국인 남자 친구와 사귀었는데, 지금은 헤어졌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조금 외로워 보였다.

지하 매표소 앞까지 왔다. 그녀의 아버지가 호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며 전철 티켓을 끊어드리라고 했다. 안내받은 것도 고마운 일인데, 표까지 끊어 주시겠다니!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씀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지하 4층이 아니라 지하 3층에서 내리라고 했다. 서로 노선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중간에 한 번 갈아타는 수고를 거쳐 고베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아내는 그들의 친절을 무척 고마워했다.

일본인들의 심성을 칭찬했다. 그 전 날 오사카성 관광 후 점심시간을 놓쳐 당황해하는 우리를 한 식당까지 안내해 준 일본인도 있었다. 자기 일을 잠시 멈추고 한국 여행객의 필요를 채워주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미국의 인류학자 루드 베네딕트 여사는 일본인 개개인의 심성은 한없이 착한데, 이 심성이 국가주의를 만날 때 강력한 폭압적 힘으로 돌변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책 <국화와 칼>은 이런 일본의 양면성을 날카롭게 분석한 책이다.

그날 우리의 밤은 행복하게 마무리되었다. 높은 산을 등반하고 하산한 뒤의 기분이라 할까.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은 더욱 맑아지는... 일본인 부녀의 호의와 친절이 곤비함을 더는 회복제가 되었다. 그들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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