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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행사 뒤에 몰려오는 행복감... 더조이유니언 서로 나눔 그 실천(praxis)의 신학터치

기사승인 2024.03.25  14: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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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뭐라 그럴까. 신선함이 쉬 가시지 않는다. 먼저 작디작은 선교 단체에서 이런 큰 행사의 장을 마련한 것이 놀랍고, 둘째는 참석자들의 면면이 놀랍다. 모두 내로라하는 사람들이다. 수준 높은 행사의 내용은 더 큰 놀라움을 안겨준다.

선착순 30명이라고 했지만 이날 행사에는 32명이 참석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지난 22일(금) 한국교회100주년 기념관에서 한 행사가 있었다. ‘한 행사’라고 했지만 여기엔 선하고 알찬 내용이 종합적으로 담겨 있는 행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참석 인원을 선착순 30명으로 한정한 것도 조바심을 갖게 했다.

행사 주최는 목회자 서로 돕기 운동 연합, 더조이유니언(the joy union)이다. 작은 거인 김성찬 목사가 이끌고 있는 단체로,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찾고 또 보려고 애쓴다. 사회에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겠다는...

목회자 서로 돕기 운동 연합을 기치로 내건 더조이유니언(the joy union)은 작은 선교단체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일들을 찾아서 하고 있다. 대표로 섬기고 있는 김성찬 목사님은 주님 일이라면 신경이 예민해지는 목회자이다.

이 행사를 '종합적'이라고 했는데, 여기엔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행사 명칭부터 그렇다. 한 번 헤아려 보시라! '더조이유니언 the joy union 연속 기획 서로 나눔, 그 실천(praxis)의 신학 터치 1 & 후원의 날' 읽기에 숨이 가쁠 정도다.

신학 터치의 주제가 '역사와 문학'이다. 착안이 산뜻하다. 주제는 중의적 의미로 읽혀진다. 이날 강사는 배덕만 박찬희 두 교수였다. 담당을 굳이 갈래지운다면 '역사-배덕만 교수, 문학-박찬희 교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이 역사 신학자 배덕만 교수는 유려한 문장가로서 문학에 대한 조예도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고, 시인인 박찬희 교수는 또한 중세 교회사 그 중에서도 동방정교회에 대한 권위자이기 때문이다.

역사신학자이자 시인인 박찬희 목사는 이날 '격동기 기독교 문학과 그 시선'이란 제목의 발표를 통해 문학하는 사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상고하게 했다. 대담자로 나선 김윤환 목사도 시인으로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다.

서양 문학은 기독교에서 배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가 누구이든 또 어디서 작품을 꽃 피웠든 파고 들어가 보면 기독교와 연결되어 있다. 기독교 이전의 고전들도 구약의 하나님에게서 음양으로 연원한다.

박 시인은 그 중 '격변기 기독교 문학과 그 시선'이란 제목 하에 단테와 호손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품격 있게 설명해 주었다. 대표작 하나씩을 선별했는데, 단테는 '신곡(神曲)', 호손은 '주홍글씨',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그 작품들이다.

배덕만 교수의 발표 제목은 빈곤과 싸운 사람들:복음주의 전통을 중심으로'이다. 유물사관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역사는 일면 빈곤과의 투쟁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원리는 21세기인 지금까지 작동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배덕만 교수는 '빈곤과 싸운 사람들'에 대해 기독교 복음주의 전통의 입장에서 소상하게 발표해 참석자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대담자로는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고 있는 김일환 전도사가 맡아 수고했다.

배 교수는 여기서 과연 기독교는 그리고 교회는 어느 지점에 위치해 왔는가를 시대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2천 년 기독교 역사에서 빈민 구제 내지 섬김은 부차적 문제가 아니라 목회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었다고 강조한다.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은 대립의 문제가 아니라 양립하면서 상호 교호(交互)할 때 하나님 나라로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별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거룩한 산 제물은 이 두 개가 하나 될 때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반성할 건 없는가? 시혜적 섬김, 부차적 베풂, 보이기 위한 봉사는 아니었는지. 따라서 교회 성장 일변도와 맘몬주의에 결박되어 있지는 않았는지... 19세기 말 미국의 찰스 M. 쉘던은 이런 상황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What Would Jesus Do?)에서 신랄하게 고발하지 않았는가?

좁게는 사회 복지 넓게는 신앙 일반에 해당되는 '빈곤'과 '섬김'에 대한 주제가 나오자 그동안 쌓아 두었던 생각들이 여기저기서 돌출했다. 통제 불능으로 가기 십상이었다. 분위기를 눈치챈 진행자가 따로 시간을 마련해서 1박을 하더라도 진지하게 토론해 보자고 정리하는 선에서 열기를 가라앉혔다.

특순(特順)으로 필자가 쓴 <책, 누구나 잘 쓸 수 있다>(디자인 나무)를 갖고 저자와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대담자로 평택성결교회 정재우 목사가 나서서 대화를 졸졸졸 개울물 흐르듯 잘 진행해 의미를 더했다.

한 가지 특기(特記)할 게 있다. 특순(特順)이다. 특별 순서, 주최 측의 사랑 깃든 배려가 엿보인다. 나의 졸저 <글, 누구나 잘 쓸 수 있다>를 가지고 저자와의 대화를 한 것이다. 가벼운 책을 무게 있게 받아주어 고맙다. 대담자는 평택성결교회 정재우 원로목사, 정 목사님은 문(이론)과 무(실천)를 겸비한 목회자로 이름 나 있는 분이다.

저자보다 더 폭 넓게 준비해 와 대담이 졸졸졸 개울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었다. 현문(賢問)에 우답(愚答)이 많지 않았나 싶다. 대담자의 격이 '저자와의 대화' 수준을 결정한다. '글쓰기는 훈련이다'라는 결론으로 저자와의 대화 특순을 마쳤다.

박찬희 목사는 문단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시인이다. 2024년 중부광역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이라는 쾌거를 거두면서 시인으로서 위상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이날 박 시인 당선에 대한 축하의미로 케이크 촛불 의식을 거행했다.

케이크가 올라 왔다. 축하의 시간이다. 박찬희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시인이다. 그것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 2024년 중부광역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이다. 시를 아는 사람이 시를 찾아 읽고, 시인을 아는 사람이 시인을 챙기는 법이다. 더조이유니언 김성찬 대표도 뛰어난 시인 아닌가.

마지막으로 젊은 개척자 다섯 분에게 후원금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젊은 개척자'라는 데 방점을 둔 후원금이다. 어렵고 약하고 힘든 교회를 뛰어넘어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모범적인 교회로 성장하고 있는 또 그럴 가능성이 있는 젊은 교회를 엄선했다. 풍기는 의미가 훈훈했다.

30여 명의 회원들이 참석해서 오붓한 분위기에서 행사를 치뤘다. 한 회원은 이 행사를 '화기애애(和氣靄靄)'로 표현했다.

더조이유니언 작은 선교 단체지만 큰 일들을 거뜬히 치뤄내는 그 '에너지'는 어디서 기인할까. 물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임을 잘 안다. 하나님도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행사를 준비한 임원들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들이다. 신일합일(神人合一), 김성찬 대표와 김이진 후원회장을 비롯해 수고한 임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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