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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隨想)] 추수감사절에 무슨 일이?

기사승인 2022.11.29  01: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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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감사주일을 한 주 늦춰야 했습니다. 코로나19와 종가 행사 그리고 교회의 사정 여럿이 겹쳤기 때문입니다. 그중 코로나19로 인해 예배 참여자가 많지 않은 것이 가장 큽니다.

한 주 늦추다 보니 문제들이 발생했습니다. 강대상에 올려놓은 과일이 무르는 것도 있었습니다. 무농약 과일일수록 상하는 정도가 심해 지난 주 참석한 성도들과 나누어야 했습니다.

시쳇말로 김이 좀 빠졌다고 할까요. 그래도 잔치는 잔치입니다. 여전도회에서 떡을 맞추어 올렸구요, 박 권사님은 청포도를 새것으로 다시 바꾸었습니다. 20kg 햅쌀도 눈에 띄었습니다.

11월 27일, 우리 교회는 11월 넷째 주일에 추수감사예배를 드렸다.

교회 사정으로 1주 순연된 추수감사절이지만 농산물 중심의 먹거리가 다시 채워진 것이 고마웠습니다. 농산물뿐 아닙니다. 부족한 성도들을 대신하며 예배당을 가득 채운 분도 있습니다.

오늘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이틀 전, 그러니까 11월 25일 금요일이었습니다. 상주 한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는 의사 김상현 선배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이 목사, 오는 주일(11월 27일) 덕천교회 가서 예배드리려 하는데... 김천과 가까운 상주에 왔으니 목사님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

"예, 좋지요. 대 환영입니다. 형수님과 함께 오시는 거지요?"

극긍정의 답변을 했습니다만 그 안에는 말 못할 속내들이 잠복해 있습니다. 사실 교회에 손님이 온다고 할 때 덜컥 겁이 납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교회가 초라하다는 것이 제일 마음에 걸립니다.

김상현 선교사님이 덕천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인사말씀을 전하고 있다.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것이 사람의 일반적 심성입니다. 은퇴를 목전에 둔 나이에 걸맞게 중형교회를 폼나게 목회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작은 농촌교회를 붙들고 허덕이는 모습이라니요.

또 있습니다. 이건 당장 현실적으로 봉착할 수 있는 문제여서 더욱 당혹스럽게 됩니다. 화장실 문제입니다. 곧이곧대로 발설하기가 저어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선배님께 전화를 드릴까 말까 판단이 잘 서지 않았습니다.

예배 전, 성도들을 수송하기 위해 출발하면서 김상현 선배에게 전화를 넣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전화입니다. 호기(豪氣)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잦아드는 목소리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형님, 출발하셨어요?"

"응, 출발했어요. 34km 남은 것으로 나오는데..."

"죄송하지만 중간에 볼일을 종 보고 오세요. 지금 예배당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어서요."

김 선배님은 교회 사정을 대번에 알아듣는 것 같았습니다.

"알았어요. ... 그런데 중간에 화장실이 있을지 모르겠네..."

이명재 목사가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양보하는 삶을 살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배 시간 20분 전에 형님 내외분이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화장실을 막고 있는 철제 펜스 앞에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좀 편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묵도로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설교 전 김상현 선교사님이 등단해 자신을 직접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중국 선교 30년을 내려놓고 들어와 재입국이 불허된 가운데 지금은 상주 한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 후배인 이명재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에 한 번 와서 예배를 드리고 싶었는데, 오는 날이 마침 교회 잔칫날이어서 좋고, 무엇보다도 성도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고 인사했습니다.

농촌교회에 아기 울음소리가 끊어진 지 오래인데 다섯 명의 유아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을 경이롭게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유아들도 처음 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신기한 듯 옆에 앉아 재롱을 피웠습니다.

유아 놀이방에 모여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인데, 추수감사절인 이날 5명의 영유아가 예배에 참석, 또 다른 활력소로 작용했다.

김 선교사님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습니다. 강대상 위에 봉헌한 떡과 음료수 과일 등을 권사님들이 똑같이 나누었습니다. 참석하지 못한 성도들 몫은 권사님들이 몇 개씩 챙겨 전달하도록 했습니다.

코로나19와 봉사할 인력의 부족으로 주일 공동식사를 못한 지가 이태를 넘었습니다. 형님 부부를 모시고 한 음식점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대접했습니다. 후배에게 부담이 될까 봐 자장면으로 간단히 하자고 했습니다.

에스페로 커피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형님이 정성을 담아 직접 내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음 만날 때 또 한 병을 준비해 오겠다고 했습니다. 피어오르는 후배 사랑의 향기가 진했음은 물론입니다.

상주에서 김천까지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 자동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40분은 족히 걸릴 것입니다. 교계의 존경받는 선교사님이 작은 농촌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갑니다.

예배를 마치고 김상현 선교사님 부부와 우리 교회 성도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갑자기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고 싶었습니다. 중천에 떠 있는 해가 보였습니다. 해가 오늘 일의 처음과 끝을 다 보았다는 듯 방긋 웃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기뻐하셨을 거라고 내심 생각했습니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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