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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사건' 등 7번 체포…강창덕 민주당 대구시당 고문 별세

기사승인 2021.09.03  21: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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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인혁당 사건 배상 판결 직후의 고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대구 지역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인 야성(野星) 강창덕(姜昌德)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고문이 9월 3일(금) 낮 12시59분께 영남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만).

1927년 11월30일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4년 8월 여운형(呂運亨·1886∼1947) 선생이 조직한 항일 비밀 결사단체인 조선건국동맹에 참여했다가 '반일사상 유포' 죄목으로 일제 경찰 주재소 땅굴에 10일간 구류된 것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에 2번, 미군정 때 1번, 이승만 대통령 때 1번, 장면 총리 때 1번, 박정희 대통령 때 2번 등 모두 7번 체포되며 혁신계 정당 활동과 민주화·통일 운동에 앞장섰다.

독학으로 1944년 11월 경북도청 공무원 모집시험에 합격해 공무원 생활을 했고, 대구상고 야간부와 조선정치대학(건국대의 전신)을 다닌 뒤에는 학교 교사와 1956∼1960년 영남일보와 대구매일신문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근로인민당·사회대중당 등 혁신계 정당 활동 외길을 걸었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수호 경북협의회'를 만들어 총무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중 1974년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1982년 형집행정지로 출소할 때까지 8년8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2006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고, 2007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오랜 수형 생활과 고문 후유증으로 진통제를 복용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정돼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1987년 12월 대구에서 '민족자주평화통일회의(민자통)'을 만들었고, 전국민족민주연합(전민련)과 신민주연합, 평화통일 대구시민연대 , 통일연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활동했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은 이날 '불꽃 같은 인생이셨습니다'라는 제목의 추모 논평을 내고 "평생을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에 몸 바쳐온 강 고문의 영면을 기원하며, 고인께서 행동으로 보여주신 민주주의를 향한 진심을 가슴 깊이 새기겠다"고 애도했다.

유족은 3남1녀(강상호·강상우·강상구·조태임) 등이 있다. 빈소는 대구전문장례식장 201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5일, 장지는 대구 현대공원 제1묘원. ☎ 053-965-7201

chungwon@yna.co.kr

yna 이충원 기자 gcilbonews@daum.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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