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재(본 신문 편집고문)
이창재(본 신문 편집고문) |
새해가 엊그제 시작된 것 같은 데 어느새 7월이다. 한해의 절반인 6개월을 훌쩍 넘겼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하며 지냈고 또 무엇을 성취해 내었는가?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과 미래에 보내는 새로운 각오가 교차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이럴 때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은 삶이란 무엇일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이다.
왜 사는 걸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어떤 동기로 삶을 이어가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계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프랭클(1905~1997)의 진단을 들어보자.
그는 인간은 의미에의 의지(will to meaning)를 갖고 있다고 했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는 의미를 찾으려 하며 그것에 성공하면 어떤 고통과 시련도 이겨내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함께 수용됐던 부모와 아내 형 누이동생 등은 수용 직후 뿔뿔이 흩어져 행방을 알지 못했다.
프랭클은 힘겨운 강제노동을 이런 생각을 하며 견뎌냈다. "내가 힘들수록 우리 가족들은 조금 더 편해지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힘겨운 노동이 즐거운 노동이 되었다.(프랭클은 수용소에서 풀려난 후 누이동생을 제외하고 모든 가족이 학살당한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인간은 의미를 먹고 산다.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무릎을 꿇는다. 며칠 전 우리 곁을 떠난 고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그러했으리라 믿는다. 박 시장의 명복을 빈다.
결국 프랭클의 설명은 이렇게 정리된다.
"왜 살아야 하는 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행동과 태도가 올바른 지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를 좌표 삼아 살아가야 한다.
'양심의 소리'. 프랭클이 사용한 단어를 대하면서 난 누군가 말한 하늘의 북소리를 연상했다.
삶의 의미를 모르고 하루하루 소모하는 삶은 정처 없는 나그네 길과 같다. 갈 곳을 알더라도 일상에 파묻혀 살다보면 방향을 잃는다.
그때 하늘에서는 북소리를 울려 우리에게 갈 바를 다시 제시한다. 그 소리에 순종할 때 우리의 삶은 소명이 된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유대인은 새해 첫날인 나팔절에 뿔나팔을 울려 새해의 시작을 알린다. 잠자는 자들아 깨어나라! 공허한 것을 찾느랴 인생을 낭비하는 자가 되지 말라! 그것이 나팔 소리의 뜻이라고 한다.
일상생활의 분주함에 빠져들다 보면 삶의 참 목적에서 멀어진다. 악한 생각이 수 없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삶의 권태로움에서 오는 나태함에 빠져들고 만다. 그럴 때 뿔 나팔은 외친다. 너의 영혼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나팔 소리가 나를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어느새 올해의 반 이상이 지나갔다. 열심을 다하지 못한 하루하루를 반성한다. 그렇다고 미래만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 오늘에 충실할 뿐이다.
아침에 눈 뜰 때마다 하늘의 북소리를 듣고자 한다.
나팔절의 뿔나팔 소리라도 좋다. 그 소리가 삶 속에 공명을 일으키길 소망한다.
이창재 gcilbo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