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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시평(29) - 패럴림픽을 보고 생각나는 것 몇 가지

기사승인 2018.03.14  23: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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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패럴림픽(Paralympic)은 Paraplegia(양쪽 하반신 마비)와 Olympic의 합성어다. 하반신 마비뿐 아니라 지금은 몸이 불편한 모든 장애인을 대상으로 범위가 확대되었다. 그러니까 장애인들의 올림픽이라고 보면 된다. 동계와 하계 올림픽이 끝난 직후 패럴림픽이 열리게 된다.

지금 평창 패럴림픽이 한창 진행 중이다. 그 열기가 일반 올림픽만큼 높을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의 호응이 낮아도 너무 낮다. 장애인에 대한 옅은 배려심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언론사들의 취재도 마찬가지어서 지금 패럴림픽이 열리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패럴림픽은 한국에서 열리고 있는데, 경기 중계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에서 비중 있게 한다는 말들이 돈다. 부끄러운 일이다. 이것은 사회의 흐름과도 맥을 같이 한다. 강자와 큰 것을 선호하는 우승열패(優勝劣敗)의 반영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치권이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일반 올림픽 때는 만사 제쳐두고 얼굴을 내밀던 정치인들이 패럴림픽에는 발길을 뚝 끊었다는 것이다. 표와 인기를 먹고 사는 게 정치인이라고 하지만 이런 현실 앞에 비정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나뿐이 아니리라.

평화와 친선은 올림픽의 2대 정신이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로 불리는 피에르 쿠베르탱의 말에서도 올림픽 정신이 우러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

쿠베르탱의 이 말은 메달을 목에 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들도 최선을 다 한 것만으로도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것을 패럴림픽과 연결지어 생각한다면, 비장애인의 일반 올림픽도 중요하지만 장애인들의 패럴림픽도 중요도에 있어서 그것에 뒤지지 않다 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올림픽 정신은 약자와 손잡고 가라  하는데, 손을 뿌리치며 강자 혼자 내달리고 있다. 먼 곳에서 찾을 것 없다. 정치판에 그대로 나타난다. 당장 우리 지역을 보자. 비장애인들의 일반 올림픽에서는 메달 선수의 시진을 캡쳐해 SNS에 올리면서 응원 구호를 요란하게 외쳐대더니 패럴림픽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다.

다행스럽게도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관심을 갖고 경기장을 자주 찾는다는 보도다. 문 대통령은 방송사에 패럴림픽 중계 시간을 늘려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정치인들도 사진 찍어 올리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평창 패럴림픽에 참석해 장애인 선수들을 격려해 주는 따뜻함을 가지면 좋겠다.

이번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는 49개 나라에서 570명의 선수가 출전했다고 한다. 3월 18일이니까 아직 1/3(4일) 남았다. 관심을 갖고 응원과 격려를 함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 되는 기쁨을 누릴 순 없을까. 약자와 함께 하는 마음만큼 소중한 게 없다. 평창의 눈과 얼음을 녹이는 훈기가 될 것이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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