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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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
여전히 노동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후배가 있다. 내 걱정을 많이 해 준다. 약한 몸을 잘 아는 그가 건강 걱정을 해 주고, 농촌 목회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염려해 준다. 또 다른 하나는 보수성향이 지배하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갑갑함에 대한 걱정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보수의 심장이라고 일컫는 지역에서 진보 개혁 철학을 견지하면서 사는 나에게 일종의 존경심마저 갖고 있다고 고백하는 후배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희로애락이 혼재되어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이곳도 그런 지역이라며 안도의 마음을 전한다.
사회는 갖가지 생각들이 섞여 있다. 그 생각들이 사회적 합의를 거쳐 상식과 원칙이 되며 나아가 법이 되어 작동한다. 합의의 결과에는 누구든 순응하며 따라주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어서 안타깝다. 편향된 정권에 의탁해 생각의 망치를 휘두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오늘 우연히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다가 학계와 종교계 그리고 여러 부문 단체에서 발표한 성명서를 일별했다. 윤석열 정권을 성토하는 내용들이다. 보도의 가치가 낮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정권 눈치보기 현상인지 모르겠으나 일부 신문 외에는 대다수 언론이 눈을 감고 있다.
그 중에서도 경북대와 부산대 교수들이 발표한 성명서가 먼저 눈에 띈다. 윤석열 정권의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해법과 굴욕적인 한일 정상회담을 비판하고 있었다. 경북대보다 이틀 앞선 지난 달 11일 시국선언을 발표한 부산대 교수들도 세상 흐름을 보는 관점은 비슷했다. 윤 정권의 역사의식 부재와 한-미-일 외교의 비정상적 관계를 지적했다.
그들은 대일 굴욕 외교와 대미 종속 외교로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했다. 또 위안부 배상 문제도 그렇다. 우리나라 대법원에서 일본이 책임져야 한다고 최종 판결이 난 사안이다. 이것을 대통령이 뒤집은 것은 배상의 원칙을 모르고 한 결정이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한국의 3자 변제를 꺼낸 것은 3권 분립의 민주주의 원칙을 어긴 것이라는 지적이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동해 방류도 우리의 입장이 아니라 순전히 일본의 입장에서 처리하려고 한다. 신친일파란 말을 들어도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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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경북대 교수와 연구자들이 본관 앞에서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정부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해법과 굴욕적인 한-일 정상회담을 비판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제공 |
경북대 교수들의 기자회견문을 보면, 대구경북의 진보적 학자들은 윤석열 정권 창출에 대해 국민에게 일종의 부채감을 갖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영남을 보수의 온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조금만 파고 들어가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항의 맥이 잠복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이 대구경북이다. 4.19혁명 때도 큰 동력이 되었고, 유신독재에 목숨을 내 놓고 싸운 이 지역 출신 인사들도 적지 않다.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부마항쟁도 대구경북의 지원이 없었다면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른다.
정치인들이야 이해타산에 의해 한 쪽을 지지하고, 깨어 있지 않은 민중들이야 무지해서 한 쪽을 맹종한다고 하자. 그렇지만 학계에 있는 지식인들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나라가 나아갈 방향이 흔들릴 때 길을 제시해 주고 이론적으로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그들 아닌가.
따라서 대학 교수들에게 요구되는 사항이 있다. 사물과 현상을 보는 눈이 냉철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에 기반해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정치인들이 한쪽 편향적이어서 국민 전체를 아우르지 못할 때 바로잡아 주어야 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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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얼치기 교수들이 한 술 더 떠 정권을 그릇된 길로 가도록 부추기고 있지는 않은지. 윤 정권의 대일 굴욕 외교는 식민지 사관에 근거하고 있다.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는 이론이다. 이것은 학자들이 만들어 제공한 것 아닌가.
한미일 방위체제 구축 이론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미국의 MD 방어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을 삼척동자도 안다. 중국과 러시아를 한 축으로 하고 미일을 다른 한 축으로 해서 피아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한반도의 남쪽은 미국, 북쪽은 중국에 편입시켜 긴장 관계를 만드는 것.
이렇게 되면 전쟁의 공포가 한반도를 휩싸게 된다. MD체계는 평화와는 거리가 먼 미국 일방의 시스템이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전문가(대학 교수)들이 바로 잡아주기는 커녕 부추기고 있는 게 안타깝다. 총에는 총, 핵무기에는 핵무기로 맞서겠다는 전쟁 전략이어서 무섭다.
지난 달 발표된 경북대 교수 및 은퇴 교사들의 기자회견문은 이것을 지적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생활도 바뀌게 마련이다.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고 교수들이 그것을 지켜 봤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다. 교수들이 대자보를 붙이고 학생들이 구경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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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사진=연합뉴스). |
취업 때문에 정치에 관심 둘 여유가 없다는 대학생들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때나 따라 다녔다. 정권은 이 문제를 시의적절하게 이용하고 있고... 젊은이들에게 정의가 사라진 나라에는 별로 희망이 없다.
다른 지역을 예거할 필요 없이 당장 김천 지역만 해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만나서 대화하다 보면 깨어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데 조직되지 않은 시민의 힘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깨어나는 시민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는 것에서 그나마 작은 위안을 삼는다.
발행인 gcilbo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