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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불타는 예술혼을 오롯이 김천예고에... 설립자 이신화 명예교장

기사승인 2023.05.12  21: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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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김천예술고등학교 전경

영국 신사를 대하는 것 같은 어려움

쉽게 손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아서 더 그렇다. 영국 신사와도 같은 그와 대담을 하고 기사를 쓰기 위해 대화를 시도했다가 몇 번이나 포기하고 말았다. 글을 만들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자리는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일이 있어 잠시 들른 학교 운동장에선 청소년들의 응원 소리로 왁자지껄했다. 김천예고 운동회가 있는 날이라고 했다. 청소년들의 끼를 엿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학교 설립자인 이신화 명예교장 및 몇몇 교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본부석에 앉아 잠깐 운동회를 구경했다. 사회는 조용하나 학교 안의 움직임은 울림의 진폭이 컸다. 이신화 선생이 손을 잡아끌었다.

변화하고 있는 김천예고

변한 학교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새로운 것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김천예고 출신 김호중으로 인해 학교가 반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팬클럽 아리수 회원들을 위해 보고 쉬고 즐길 거리들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

김호중 전시실 안의 포토존에서...

아리수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정자이고 입체물이며 그림이라고 했다. 학교 뒤 마련된 김호중 전시관엔 그와 관련된 물품들이 보라색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전시실 안엔 김호중과 같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었다.

명예교장실로 가서 다담을 나누었다. 이신화 명예교장의 예술혼은 깊고도 넓다. 김천이라는 넓지 않은 공간에서 예술가 나아가 예술행정가를 갖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만큼 이 명예교장은 지역에서 보배와도 같은 존재다.

경세와 치세학이 아닌 예술을 택한 사람

6.25 전쟁 직후의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암흑과도 같은 상황이어서 먹고 사는 것이 급선무였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에 솔깃해 경세와 치세학을 공부해 생활지반을 잡으려는 사람이 많았다.

이러할 때 이 명예교장은 예술, 그것도 음악을 마음에 두었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닌 그는 찬송가와 오르간 등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중학생 때부터 성가대 반주는 그의 몫이었다. 지금까지 그 반주가 이어지고 있다.

이신화 명예교장과 가수 김호중

부모님의 격려와 선생님들이 적극 권해서 서울대학교 음대에 입학해 피아노를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서울 풍문여고 음악교사를 거쳐 30대 초반에 한일여고 교장으로 부임했다. 그 후 40여 성상을 교육 행정가로 후학을 양성했다.

음악을 공부했고 예술 전반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예술로 지역에 이바지하고 싶었다. 보통 가질 수 있는 생각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꿈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특별한 꿈의 결실이 김천예술고등학교 설립이다.

불타는 예술혼이 김천예고로 결실 맺다

1986년의 일이다. 주위에 만류하는 사람이 많았다. 예술고는 대도시에서나 가능하지 김천과 같은 지방의 중소도시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여기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성공할 수 없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그래도 이 명예교장은 고집을 꺾지 않고 밀어붙였다. 그가 할 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의 집념은 예고를 소리 없이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개교 후 6년만에 특목고로 지정되었고, 2019년엔 일반계 예술고로 전환되어 공부의 문이 넓어졌다. 

서수용 전 교장과 심찬양 작가 그리고 이신화 명예교장

그 사이 예술에 필요한 공간들이 하나씩 들어섰다. 무궁화관, 덕예원, 샛별관, 정산아트홀, 음악관, 아리랑무용관, 유원갤러리 등 이름만으로도 예술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건물들이다. 이곳에서 동고동락한 학생들이 우리 예술을 짊어지고 있다.

김천예고 출신들이 사회 곳곳에서 맡은 바 소임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이 이 명예교장의 자랑이자 자부심이다. 이들은 이 명예교장의 꿈을 현실이 되게 한 열매들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김호중과 심찬양을 빼놓을 수 없다.

김천예고가 배출한 걸출한 예술인-김호중 & 심찬양

김호중은 팬카페 회원만 십오만을 헤아리는 대중 가수다. 김천예고 주위에 만들어 놓은 김호중 거리는 온통 보랏빛이다. 김천의 지도를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천예고도 김호중 팬을 생각해서 길과 휴식처 그리고 전시실을 새로 꾸몄다.

심찬양은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다. 협소한 한반도를 벗어나 광활한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글로벌 아티스트다. 심찬양 작가가 예술에 무지한 학교장 밑에서 공부했다면 그래피티에서 웅지를 펴지 못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2023년 신입생 음악회

심찬양이 예고 시절 시도 때도 없이 학교 벽에 그린 그림을 예술의 싹이 아니라 낙서로 치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신화 교장은 용돈까지 쥐어주며 심찬양을 격려하고 응원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심 작가의 입을 통해 전해진 이야기이다.

이 명예교장은 3천여 명에 이르는 졸업생들 이름을 꿰뚫고 있다. 학교를 방문하는 졸업생들이 가까운 친구의 소식을 자신들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는 선생님을 보고 감복하면서 교육자 중의 교육자라고 입을 모은다.

인간의 순수성이 박제되는 듯한 안타까움

이 명예교장이 안타까워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사회 전반에 해당되는 현상인데, 인간의 순수성이 상실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이런 세상 풍토에 길들여져 자라나는 아이들의 순수성이 피지도 못하고 박제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다.

기능화되고 계산적인 사람에게 순수성은 발붙일 여지가 없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동요가 사라지는 것도 이런 현상의 하나이다. 동요는 동심을 고양시키고 사람을 맑게 만드는 기제인데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사회의 메마름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신화 명예교장 접견실에서 대담을 마치고...

예술인의 혜안이 아니고 뭔가. 이신화 명예교장과 대화하다 보면 스스로 예술인이 되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 쉽다. 마음이 순수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따뜻하고 겸손한 사람, 대담을 마치고 나오는 나의 손을 꼭 잡고 주차장까지 배웅해 주었다. 학교 전체에 온기가 피어올랐다.

취재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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