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서평] 리처드 로스타인 지음 <부동산, 설계된 절망>

기사승인 2022.12.04  13:55:00

공유
default_news_ad1

- 양재섭(서울연구원 도시공간연구실 선임연구위원)

리처드 로스스타인 지음, 김병순 번역 <부동산, 설계된 절망>(갈라파고스, 2022년 3월 출판)

국가에 의한 미국의 인종차별과 흑백 간 주거지 분리

“이 책에서 주장하는 핵심내용은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들이 헌법으로 보장된, 중산층에 통합될 수단과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박탈이 국가의 뒷받침 속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할 의무도 국가에 있다.” - 15쪽

『부동산, 설계된 절망』이라는 책 제목만 보면, 자칫 부동산 관련 서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은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과 흑백 간 주거지 분리의 역사를 다룬다. 저자는 미국의 모든 대도시에서 노골적으로 시행된 흑인과 백인의 주거구역 분리가 단순히 개인의 편견이나 선택으로 만들어진 현상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 철저하게 계획되고 의도된 차별적인 공공정책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책의 원제목 『법의 색깔(The color of law)』과 「우리 정부가 어떻게 미국을 분리시켰는 지에 대한 잊혀진 역사(A forgotten history of how our government segregated America)」라는 부제의 의미가 이해된다. 1933년 뉴욕의 주택 대출 지도로 장식된 책 표지 또한 흑백 간 주거지 분리정책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가장 안전한 동네는 초록색, 가장 위험한 동네는 붉은색으로 표시되며, 흑인이 주로 거주하는 붉은색의 도심 게토 지역에서는 은행과 보험회사의 주택 담보 대출이 거부된다.

오랫동안 주거와 교육 불평등 문제에 천착해 온 저자는 미국 정부에 의한 공식적인 흑인 분리제도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지정된 구역에 살게 만든 법률 하나로 초래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수많은 노골적인 인종차별적인 법과 규정, 정부 관행들이 합쳐져서 미국 전역에 걸쳐 도심에 빈민가가 형성되었고, 백인들은 교외로 빠져나가 도심 주변에 정착함으로써 흑인과 백인의 주거구역이 분리된 모습이 완성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예제 폐지 이후 20세기까지 미국의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자치단체, 입법부와 사법부, 그리고 금융감독기관과 교육기관에서 시행된 인종 분리 정책이 노골적이면서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인종에 따라 주거구역을 분리하는 정책은 남북전쟁이 끝난 1877년 이후 국가재건 기간에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폭력적 억압이 전파되는 시기에 확산되었다.

이후 1920년대에는 단독주택 지구와 다가구주택 지구를 구분하는 주택지구 지정 조례를 통해, 그리고 1930년대 대공황기에는 뉴딜정책을 통해 흑백 간 공영주택을 차별적으로 공급하고, 백인만 사는 동네의 집주인에게 주택담보대출 보증서를 발행함으로써 흑백 간 분리를 가속화했다.

20세기 전반기까지만 해도 주택소유자들과 건축업자들은 개별 부동산 등기권리증과 주민들 간 계약서에 향후 흑인들에게 집을 팔지 않겠다는 문구를 넣었으며, 배타적 구역이 설정된 동네의 주택을 흑인이 구입하거나 임차계약을 할 경우 동네 사람들이 해당 주택 구입자나 세입자(흑인)를 퇴거시킬 수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연방정부는 교외지역에 백인 주거단지를 짓는 대규모 건설업자가 은행 융자를 손쉽게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2000년대 이후 금융감독기관은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은 흑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업체의 대출 상품(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함으로써 흑인들에게 부담되는 대출을 양산시켰고, 2008년 세계금융 위기에까지 이르게 했다.

저자는 미국에서의 흑백 간 주거지 분리가 고착화된 현 상황을 원점으로 돌리긴 어렵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자식 세대로 이어져 흑백 간 부의 격차가 심화되었고, 정부가 흑인들의 온전한 자유 노동시장의 참여를 막으면서 흑인의 소득 저하가 진행되어 경제적 여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백 주거구역 분리가 국가 통치행위의 산물이라 헌법과 관련이 있으며, 국가가 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러한 위헌적 조치를 바로잡는 방법은 국민의 손에 달려 있으며, 헌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선거를 통해 올바른 대표자를 뽑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또한 흑백 간 주거지 분리 완화를 위해 배타적 주택지구 지정을 금지하고, 대신에 저소득층과 중위 소득층 가구를 중산층과 부유층 동네로 적극적으로 통합 이주시키기 위한 ‘포용적 주택지구 지정(inclusionary zoning)’을 대안으로 제안한다.

한국 사회에서 인종 문제는 나타나지 않지만, 계층·지역 간 차별과 분리 문제는 임대아파트, 반지하 주택, 철거재개발 등 도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포용적 도시정책으로의 전환을 통해 계층·지역 간 차별과 분리를 완화하는 단초를 마련해가야 할 것이다.

* 역사서의 특성과 원저자의 의도를 고려하여 당시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함

편집부 gcilbonews@daum.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