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운동회
詩 / 고증식
만국기 나부끼는 하늘에 하낫, 뚤, 하낫, 뚤, 측백나무 울타리를 타고 넘던 선생님의 마이크 소리 개선문 뒤에 몰려 재재거리던 여린 병아리들 틈으로 사르락 사르락 금실같은 햇살 속을 걸어 어머니 오신다 쓰윽, 무명 치맛자락 문질러 온 붉디붉은 사과 한 알 나는 어머니 거친 손마디가 너무 부끄러워 줄 속으로 더 깊이 숨어버렸다 한참이나 허공을 떠받들고 있던 손길에 그날 이후 목구멍에 걸려버린 서러운 사과 한 알
반 세기 전 한 초등학교의 운동회 모습(사진=연합뉴스) |
* 가을을 상징하는 것들을 꼽으라면 가을 운동회를 빼놓을 수 없다. 요즘 아이들에겐 희미하거나 아니면 그려지는 상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50대 이상의 장노년층 어른들에게는 가을 운동회가 하나의 향수처럼 다가온다. 코로나19는 이런 행사를 더욱 겁박해서 가을 운동회를 아예 생각에서 지우게 만든다. 이럴 때 글로 그것을 만나는 일은 수고로움이 덜 하다. 고증식의 시 '가을 운동회'를 만난 것은 과외의 즐거움이다. 일종의 산문시에 속할 것인데, 시에서 피어나는 운율은 정형시 못지 않다. 이 시를 읽노라면 가을 운동회 정경이 그림처럼 뇌리에 자리잡는다. 선생님, 여린 병아리(아이들), 어머니... 운동회의 주인공들이다. 아이는 농사일을 잠시 멈추고 운동회에 온 어머니가 부끄러움의 대상이다. 아이답다. 그건 아담의 사과와 같이 서러움으로 죄송함으로 목구멍에 걸려 있다. 이게 양심이고 여기서 연로하신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비롯된다(耳穆).
취재부 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