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 서(處 暑)
詩 / 문태준
얻어온 개가 울타리 아래 땅그늘을 파댔다
짐승이 집에 맞지 않는다 싶어 낮에 다른 집에 주었다
볕에 널어두었던 고추를 걷고 양철로 덮었는데
밤이 되니 이슬이 졌다 방충망으로는 여치와 풀벌레가
딱 붙어서 문설주처럼 꿈쩍대지 않는다
가을이 오는가, 삽짝까지 심어둔 옥수숫대엔 그림자가 깊다
갈색으로 말라가는 옥수수 수염을 타고 들어간 바람이
이빨을 꼭 깨물고 빠져나온다
가을이 오는가, 감나무는 감을 달고 이파리 까칠하다
나무에게도 제 몸 빚어 자식을 낳는 일 그런 성싶다
지게가 집 쪽으로 받쳐 있으면 집을 떼메고 간다기에
달 점점 차가워지는 밤 지게를 산 쪽으로 받친다
이름은 모르나 귀익은 산새소리 알은 채 별처럼 시끄럽다
* 비내리는 처서다. 처서(處暑)은 ‘더위를 처분한다’는 뜻이니 여름 가고 가을이 오는 기점이 된다. 정말 자연의 신비는 경이롭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24절기가 맞아 들어가니... 동시에 조상의 지혜에도 놀람이 인다. 문태준의 시 ‘처서’엔 여름과 가을이 동시에 담겨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는 여름보다 오는 가을에 비중을 두고 쓴 시같다. 고향 집에 딸린 텃밭이며 거기에 짓는 식물이며, 자연의 하모니가 독자의 마음을 순화시킨다. 비 내리는 처서다. 오곡백과에 미칠 영향이 다소 걱정된다. 오늘 밤 뒤란에 가서 모기를 살필 것이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고 했지 아마? 부제 ‘수런거리는 뒤란’이 더욱 마음을 휘어잡는다. 향수는 사람을 나약하게 만들지만 그것이 순수와 통해서 좋다(耳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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