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운현(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현대사 연구가)
강덕상 선생의 부음에 부쳐
재일사학자 강덕상 선생께서 6월 12일(토) 노환으로 타계하셨다. 향년 90세. 재일조선인 문제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기신 고 박경식 선생과 함께 재일 사학계에서 쌍벽을 이뤘던 분이다. 강 선생의 와세다대학 동문이자 재일조선인 연구에 조예가 깊었고, 특히 친일파 연구의 선구자 고 임종국 선생과도 교류가 깊었던 미야다 세츠코 여사도 몇 해 전에 타계했다. 세 분을 모두 만나 뵌 것은 나로선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강 선생의 자택은 도쿄 신주쿠역 미나미구치 근처에 있었다. 나는 선생의 1층짜리 단독주택 자택을 취재차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서재는 옛 일제시대 문서들로 가득했다. 그 많은 문서에 전부 견출지를 달아 한 눈에 알아보도록 꼬리표를 달아 둔 것이 이채로웠다. 선생은 조용한 성격에 전형적인 학자풍의 면모를 가진 분이었다. 선배인 박경식 선생을 존경하였고, 박 선생 사후에 박 선생의 자료관리도 도맡아 하셨던 분이다. 인품이 그런 분이었다.
97년 4월 중순에 찾아뵈었을 때 막 원고를 탈고해 출판사에서 보내온 초교 대장을 보고 계셨다. 일제말기 조선인 학병에 관한 책(아래 오른쪽 사진)이었다. 정작 학병으로 끌려가 고생을 한 사람들은 한국사람인데 국내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학병 연구서(학병 출신들의 회고록 말고) 한 권이 없다. 선생은 그렇게 연구의 사각지대를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연구하고 또 자료수집을 하는 분이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내가 그 책을 번역하겠노라고 했더니 제자 중에서 번역하기로 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만두었다. 그래서 귀국 후 나는 학병 권유 관련 친일파들의 글을 모아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선배 역사학자들이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지금이야 역사 DB도 있고 해서 자료검색이나 수집이 매우 용이하다. 그러나 선배세대들은 일일이 도서관이나 자료관을 찾거나 당사자들을 만나서 수집하고 증언을 들어야만 했다. 한 예로 임종국 선생은 몇날 며칠을 도서관에 쳐박혀 총독부 관보를 뒤져서 친일파들의 이력을 추적하곤 했다. 선배들의 그 수고로움이 눈물겨울 정도다. 그런 노고가 있었기에 후배들이 앉아서 역사연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강 선생의 부음을 접하면서 송구한 마음과 함께 감사의 념을 떨칠 수 없다. 특히 선생은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피해 진상을 밝혀내 이 내용을 일본 교과서에 싣도록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비록 몸은 일본에서 거의 평생을 보냈지만 마음과 정신은 우리와 늘 함께 하셨던 분이다. 일본 사회의 차별 속에서도 꿋꿋이 외길을 가신 분이다. 이제 이승을 떠나신 선생의 영전에 대한민국 정부가 문화훈장(혹은 국민훈장)을 바친다 한들 흠이 될 리 없다. 아니, 그게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편집부 gcilbo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