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칼럼] 현수막 이야기 2

기사승인 2021.05.01  22:58:16

공유
default_news_ad1

-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Ph. D)

김부겸 전 의원이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가 될 것 같은데 기대하는 바가 적지 않다. 김부겸은 경북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정치학과에 진학했다. 수재 축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가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 직후 경북고 인근에 현수막이 내 걸렸다. 익명성 현수막이었다. 인쇄된 내용에 들어간 글귀는 이런 것들이다. ‘김부겸은 제2의 추미애’, ‘문재인이 똥 치우러 들어간 김부겸’, ‘김부겸이 동문이라는 게 부끄럽다’ 등등.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판단할 것이지만 상식에 어긋나는 낮은 수준의 의사 표시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양극단으로 나뉘어 공통 지점을 찾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하는 사람들의 책임이 크다.

작은 차이는 극복하고 큰 것을 위해 하나 될 수 있을 때 국가에 희망이 있다. 좋은 점은 지지해 주고 부족한 점을 보완한다는 정신으로 정치를 하면 오죽 좋을까. 모든 것이 국민과 국가에 맞춰질 때 가능한 바람이지 싶다.

허나 작금 우리의 꼬락서니는 어떤가. 한쪽이 ‘좌’하면 다른 쪽은 무조건 ‘우’다. 이쪽이 ‘전진’하면 저쪽은 ‘후퇴’다.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부겸은 정치인으로서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약점도 없지 않겠지만 그건 보완하면 된다.

경북고등학교 인근에 걸린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비난 현수막들

일을 시켜놓고 사람을 평가해야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물고 늘어지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밖에 안 된다. 이건 민주주의 국가의 성숙한 시민에게서 나오는 의식이 전혀 아니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인 우리의 낮은 정신 수준을 방증한다고나 할까.

의사 표시의 도구로 현수막을 많이 사용한다고 했다. 다음과 같은 얘기는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뒤 고향에 집을 짓고 살겠다며 양산에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양산시 하북면 관내 단체들이 반대 현수막을 내 걸었다.

반대 이유도 단순했다. ‘주민 동의 없는 사저 없다’, ‘평화로운 일상이 파괴되는 사저 건립을 중단하라’ 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대통령이 그곳에 낙향하여 살면 방문객이 잦을 것이고 번잡함 등 그 피해는 주민들이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다. 사람 사는 세상의 재미는 잦은 만남에 있다. 전임 대통령으로 인한 번잡함이 지역에 활력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 인물의 행적을 정치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복합적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 양산 사저 건축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인근 마을 곳곳에 걸렸다.

양산시 하북면 이장협의회, 주민자치위원회, 여성단체협의회, 새마을부녀회 등 반대 현수막을 건 단체의 면면을 볼 때 지역의 극우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혁지향의 대통령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통령 오지 말라는 그들의 현수막을 보고 대한민국이 과연 민주주의 국가이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뒤 바로 이어 유신독재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악법 중의 악법인 유신헌법 철폐만 외쳐도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갔다.

박정희가 종신 대통령으로 굳어 갈 때였다. 민주주의가 박제화되었던 시절, 뜻있는 젊은이들이 모여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토해내던 말이 있었다. 한국적 민주주의란 말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진정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면 박정희 물러가라고 말할 자유도 있어야 한다고.

문재인 대통령의 양산 사저 신축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내 거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그런데 정당성은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정작 마을 주민들과는 인언반구 상의도 없이 일제히 40개가 넘는 현수막이 걸린 게 숨은 의도가 없겠느냐고 주민들은 말한다.

대통령 사저 건축 반대 현수막을 내건 사람들은 이 일에 주민 동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의 하나로 들었다. 그러나 사저 건축 마을인 평산리 주민들의 얘기는 다르다. 공사에 들어가기 전 청와대 경호처와 마을 간담회가 몇 번 있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양산 사저 건축 반대 현수막에 대항해 찬성 현수막이 같은 장소 곳곳에 걸렸다.

문화가 힘인 시대가 도래했다. 여기서 힘은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동시에 함축한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역사적 인물을 끌어들여 자기 지자체 자랑에 열을 올린다. 개중엔 억지도 꽤 보인다. 관련성이 빈약한 데도 많은 것처럼 포장하고서라도 인물과 연결짓는다.

상식이 통하는 지역이라면 전임 대통령을 지역 발전의 동력으로 삼으려 할 것이다. 해방 뒤 11명의 대통령이 우리를 거쳐 갔거나 거치고 있다. 물론 그 중엔 정통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들도 있다. 극소수의 전임 대통령을 지역 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오도된 지역 정서에 기초해서, 그것도 소수의 몇 사람이 몰상식적인 행위로 매스컴을 타는 것은 보기가 좋지 않다. 편향된 시각으로 사람과 현상을 평가하는 것은 수준 낮은 태도이다. '우리가 남이가' 지역성에 기초한 사고는 그 지역뿐 아니라 국가에 암운을 드리우는 것이다.

문 대통령을 같은 면 자기들 마을로 오라는 현수막이 내 걸렸다는 소식이다. 이런 것을 두고 헤겔이 정반합의 변증법 원리를 세웠고, 토인비가 도전과 응전의 역사 법칙을 말하지 않았나 싶다. 깨어난 시민의 눈은 지역을 넘어 정의와 진리에 맞출 때 의미가 있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