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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처드 랭엄 지음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

기사승인 2021.04.18  14: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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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수연(前 경성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리처드 랭엄 지음, 이유 옮김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을유문화사, 2020년 11월 출판)

인간 본성의 이중성에 관한 진화론적 설명

사형 가설에서는 선사 시대 때 수천 년 동안 사형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은 반응적 공격 성향이 높은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러한 사람을 살해하거나 억압하는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 우리 종은 좀 더 고분고분하고 덜 공격적인 기질을 진화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p. 229)

인간은 왜 집단 내에서는 관용적이고 집단 간에는 갈등을 일으키는가? 인간은 어째서 선하면서 악한가? 저자인 인간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랭엄은 반응적 공격에 대항하는 선택과 주도적 공격에 대항하는 선택의 차이에서 그 답을 찾는다. 그는 우선 인간이나 동물이 보이는 공격이 단일 차원이 아니라 두 차원이라고 주장한다.

한 차원, 반응적 공격은 위협에 대한 대응 공격이다. 늑대, 사자 같은 많은 동물 종은 이러한 반응적 공격을 한다. 그러나 개, 고양이, 소, 돼지 같은 동물들은 반응적 공격을 하지 않는다. 이 종들이 반응적 공격에 대항하는 선택을 하게 되었고 유순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진화적으로 먼 과거에 인간에 의해 길들이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도 반응적 공격을 하지 않는다. 인간도 길들이기가 되었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누가 인간을 길들였는가? 개, 고양이, 소, 돼지 등은 인간에 의해 길들이기가 되었지만, 인간은 자기 길들이기가 되었다. 자기 길들이기는 인간 외에 야생 동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보노보가 그 예다. 침팬지와 비슷하게 생긴 보노보는 침팬지와 달리 야생에서 자기 길들이기가 된 동물이다. 그 결과 침팬지는 반응적 공격을 하지만 보노보는 반응적 공격을 하지 않는다. 자기 길들이기가 된 우리 인간도 반응적 공격을 하지 않는다. 우리의 호모 사피엔스가 홍적세 중기인 약 30만 년 전부터 길들이기가 된 결과, 우리는 반응적 공격을 하지 않는 선(善)한 종이 되었다.

길들이기가 되면 신체 해부학적 구조 면에서나 사회적 행동 면에서 아이처럼 작고 순해지는 변화를 보인다. 즉, 유형(幼形) 진화한다. 작은 뇌, 짧은 얼굴, 작은 치아, 줄어든 암수 차이, 유형 진화한 두개골 모두는 보노보에서 발견되는 길들이기된 동물의 특징이다. 보노보의 뒤쪽 끝에는 유아기 침팬지처럼 흰 털 뭉치가 있다.

다 큰 보노보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동성애적 교미 행동은 미성년의 특징을 보존한 것이다. 성년 보노보들은 성년 침팬지보다 놀이를 더 많이 한다. 이러한 길들이기 증후군은 보노보와 같이 야생에서 길들이기가 된 동물, 오래전 인간에 의해 길들이기가 된 동물, 드미트리 벨라예프가 실험을 통해 실제로 길들이기를 한 은여우, 그리고 우리 인간 종에서 흔히 보는 현상이다.

자기 길들이기는 공격적인 개체가 다른 개체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냄으로써 이루어졌다. 보노보의 자기 길들이기는 암컷 연합이 공격적인 수컷을 벌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인간 사회에서의 길들이기는 성인 남성들의 연합이 공격적인 남성, 알파 남성을 처형하는 방식으로 진화되었다. 처형의 선택적인 힘을 통해 자기 길들이기가 되었고, 그 결과 반응적 공격성이 감소했다.

반응적 공격성이 낮아지는 경향은 관대한 협동력을 증가시켰다. 인간은 비난 회피를 위해 도덕적인 행위를 채택하게 되었고,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나쁜 결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보다 반응적인 공격을 덜하게 됨에 따라 우리는 더 협동적인 종이 되었고, 네안데르탈인 대신 우리가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공격 차원, 주도적 공격은 냉정하게 계획된 공격이다. 수렵 채집인 시대에 인간은 알파 남성을 처형하기 위해 베타 남성들이 연합해서 주도적 공격을 하였다. 그 후 베타 남성 연합이 알파 남성이나 다른 집단에 가하는 주도적 공격은 협동, 공정성 같은 도덕적 감정을 발생시키기도 했지만, 또한 우리를 폭력적인 종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수렵 채집인 시대의 남성 연합은 다른 집단을 습격과 매복으로 공격하는 ‘단순한’ 전쟁을 하였다.

침팬지나 인간은 집단 간에 주도적 공격을 했지만, 그 효과는 언어를 사용한 인간이 더욱 강력했다. 인간의 주도적 연합 공격은 아주 오래전 침팬지와 우리 사이의 공동 조상 때부터 있었지만, 인간이 50만 년 전에서 30만 년 전 언젠가 언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그 위력이 강해졌다. 인간은 언어에 의해 가능해진 의도의 공유로 살해 능력이 현저하게 증대하였다. 인간의 악한 본성은 ‘복잡한’ 전쟁과 집단 살육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전쟁과 같은 주도적 연합 공격이 진화적으로 균형이라 해서 우리가 전쟁 감소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무용(無用)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우리 인간이 끊임없이 전쟁을 하지만 전쟁을 억제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작은 집단들이 통합되어 더 큰 집단이 되면 전쟁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한다.

그 점은 이해하지만, 그가 세계 정부를 옹호한 점은, 이 책의 옥의 티로서, 사회 법칙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보여준다. 세계 정부와 같은 더욱 거대한 관료제가 우리의 나아갈 길이 아님은 루트비히 폰 미제스를 비롯한 많은 자유주의 학자가 이미 설득력 있게 밝혔다. 우리가 가꾸어 나갈 제도는 세계 정부가 아니라 세계적 시장 경제이다. 

편집부 gcilbonews@daum.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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