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그럴 나이가 된 걸까. 나이 들면 어린 아이와 같이 된다는 말도 있다는데... 육체적 굼뜸도 그렇지만 생각이 날로 유약해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정이 그리워지고, 관심을 받고 싶고, 누군가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
이순(耳順)이 가까이 되고서부터 고등학교 동기 모임에 몇 번 참석한 적이 있다. 그런 모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외모는 할아버지의 그것이지만 생각은 고등학생 시절, 그러니까 10대 후반을 헤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두가 그랬다.
작은 연(緣)을 찾아서라도 공감할 수 있는 장(場)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삶들 아니었나. 하루 24시간이 나의 것 같았지만 잠자는 것 빼고는 내 것인 게 없었다. 수면 시간까지도 남을 위한 축적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반창회 모임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종로3가 15번 출구 보쌈집. 10 여 명의 친구가 참석하겠다고 이름을 올렸다. 요 몇 년 사이 전체 동기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의 이름이 보인다. 몇 친구는 졸업하고 첫 만남이니 반백년 가까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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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오후 6시 30분, 3학년 1반 친구들이 한 음식점에 모여 반창회를 갖고 있다(사진 김태훈) |
그런데 묘한 것은 이름을 보는 순간 그 얼굴들이 함께 떠오르는 게 아닌가. 풋풋한 고등학생 때의 얼굴이...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어렵게 올린 한 친구의 사진에도 고교 시절의 앳된 모습이 얼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이런 게 고교 동창인가.
'반창회(班窓會)'라는 말이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사전 등재 여부와 무관하게 주위 많은 이들이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말은 습관이라 했으니 사용하면 생명을 얻는 게 아닌가. 졸업할 때 우리 반 친구 숫자는 모두 55명이었다.
반창회 단톡방에 한 친구가 대중가요를 하나 올렸다. 조용필의 '친구여'였다. 가사 말을 음미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 그 노랫말 속에 친구들이 다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내 삶 전체가 녹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눈물이 나오려 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내가 "이런 노래 듣는 것 보니 당신도 나이가 들었나 보네"라고 했다. 한 친구가 내친 김에 졸업 앨범에 있는 반 친구들의 사진과 이름을 통째로 스캔해 올렸다. 고만고만한 얼굴들이 귀여웠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한 친구의 선한 얼굴이 유난히 크게 다가온다.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다. 유복한 가정의 외동아들로 나와는 삶의 조건이 다른 친구였다. 어린 나이에도 생각이 올되어 어려운 나에게 덕을 많이 베풀었다. 그가 세상을 뜬 지도 30 여년이 지난 것 같다.
조용필의 '친구여'를 듣고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전에는 유명 시인의 시나 이름 있는 작가의 소설을 읽고 울림을 느끼곤 했는데, 대중가요에 울컥하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좀 이상하다. 일부러 찾으려 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노래까지 바로 잡혔다.
한 밴드를 지나치려는데 김광석의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좀 처량한 것 같지만 60대 우리 또래의 사람들에게 공통된 이야기일 것 같다. 자녀들 다 출가시키고 부부가 여생을 즐기려 할 때 영원히 이별을 해야 하는 운명... 슬픈 일이다.
반창회 단톡방에서 친구 찾기 운동이라도 펼칠 양, 다짐들을 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이 효과적이라고 하는 친구, 한 모임 방명록을 뒤져 반 친구들을 찾으려고 애쓰기도 한 친구…. 그야말로 '우정 찾아 삼만리'이다.
현대를 백세 인생 운운한다. 긴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몸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많은 친구들이 그랬다. 당장 내 경우만 해도 척추 디스크로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다.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반창회로 모인다는 소식에 마음은 굴뚝같다. 하나 거동에 자신이 없어 걱정이다. 이리저리 궁리해 본다. 묘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제는 몸을 테스트해 보느라 300m 정도를 걸어보았다. 무척 힘들었다. 밤새 끙끙 앓아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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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목사(본 신문 발행인, Ph. D) |
조용필의 '친구여'를 다시 한 번 듣는다. 가끔 대중가요로부터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가사는 한 편의 시요, 가수의 음성은 진솔한 배경 음악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대중의 정서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이리라. 우정의 소중함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