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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시평] 기독교 추락의 끝은 어디인가?

기사승인 2020.07.14  10: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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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목회자란 이름이 부끄러운 세상

난 요즘 자기소개를 해야 할 때 목사라는 직함에 무게를 별로 두지 않고 있다. 전에는 안 그랬다. 작은 자부심이나마 갖고 있었다. 이렇게 된 것은 물론 기독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 기인한다. 자기 역할을 못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현실이 그 이유가 된다.

옳든 거르든 목사만큼 자기 확신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나님과 직통(直通)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편이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이 땅에서 대신하라고 세우신 당신의 사자(使者)이다. 그러니 사람의 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코로나19 시국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초기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량 확산이 기독교를 참칭하는 이단 종교집단에서 일어났다. 수그러드는 것 같다가 재 확산되면서도 크고 작은 교회 모임이 확산의 온상지로 매스컴에 오르내렸다. 교회가 경계의 대상이 된 것이다.

보건 당국의 국민 보호 조치가 기독교 탄압인가

보건 당국의 지침을 따르기만 해도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질시를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왜 공 예배만 드리라고 하고, 다른 모임은 하지 못하게 하느냐며 반발한다. 기독교 탄압이라고 목청을 돋우는 이들도 있다. 그런 반발엔 목회자가 앞장선다.

사람 모이는 것을 막으려면 백화점과 같은 다중이 모이는 곳을 먼저 막아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애먼 교회만 갖고 그러느냐고 항의한다. 음식점이 교회보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의 가능성이 높은데 교회 모임만 막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이다. 기독교의 현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다. 전염병 확산을 예방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교인들에게도 더 건강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도우는 일이다. 이것을 방치할 때 벌어지는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게로 귀결된다.

교회 모임을 백화점 등 다중 시설에 견주어 말하는 것도 타당성이 없다. 국가 경영이란 큰 틀에서 생각해 보자. 백화점 등 대형 영업점 등을 폐쇄했을 때 나라가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그런데 교회 소모임을 일시 중단한다고 변수가 되기라도 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교회의 사회적 기능이 빈약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반대해 온 목회자들의 주장일 뿐

국가가 어려움에 처할 때 종교는 사랑의 정신으로 협조하고 동참하는 게 옳다. 이럴 때 딴 소리를 내는 것은 국가 발전뿐 아니라 복음 전파에도 하등 도움이 안 된다. 돌아가는 상황을 볼 때 반발 의도를 꼭 신앙적으로 보기도 어렵다. 정치적인 복선이 깔려 있지 않나 의심을 산다.

문재인 정부에 반대 목소리를 내 온 목사들이 '기독교 탄압' 운운하는 기류를 주도하고 있다. 전광훈 목사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목사'라는 명칭을 붙여 줬지만 내 주위의 사람들은 전광훈을 목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벤트 회사 대표 또는 극우단체 운동가쯤으로 생각한다.

광화문 집회 등에서 특정 정당 지지를 호소해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기소된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목사가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의 일만 보더라도 그는 형해화한 한기총 대표회장 직무를 법원으로부터 정지당했다. 그의 교회는 지금 재건축 부지에 속해 있다. 싯가 80억의 교회를 570억 원을 주지 않으면 철거하지 않겠다며 생떼를 쓰고 있다. 모두 합의를 보고 이사했는데 그 교회만 남아 있다고 한다.

일반 사람들도 이런 억지는 부리지 않는다. 그가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되었을 때다. 자신은 당당하다며 감옥 안에서 좌파 정권과 맞서 싸우겠다고 호기를 부리고 감옥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 일? 구속된 지 얼마 안 돼 보석으로 풀어달라고 또 떼를 쓰기 시작했다.

술수에 능한 그의 보석을 받아 줄 법원이 아니다. 감옥 안에서 급사할 우려가 있으니 풀어달라고 했다. 전광훈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지만 일제강점기 때의 두 신앙인이 떠올랐다.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이다. 주 목사님은 신사참배에 반대하는 뜻을 굽히지 않고 옥사한 분이다.

기독교 추락을 부채질하는 전광훈의 행태

손양원 목사님은 출옥해서 지키지 않아도 좋으니 신문조서에 신사참배 반대하지 않는다고 도장만 찍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주면 석방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일제의 회유이다. 손 목사님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일제가 패망하고 8.15 광복으로 감옥 문이 열렸을 때 당당하게 걸어나왔다.

전광훈을 이분들과 견주는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빨갱이 정권 문재인을 끌어내리자, 나라를 김정은에게 갖다 바치려 한다, 우리나라는 곧 공산화된다,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을 찍어야 한다 등등… 입에 거품을 품고 결기(?)를 보였다. 그런 전광훈이 감옥 내 급사 운운하며 풀어 달라고 하니 얼마나 우스운가.

어제(7월 13일) 전광훈의 재판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지금 공직선거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을 받으면서 뜬금없이 문 대통령을 법정 증인으로 채택해 달라고 떼를 썼다고 한다. 간첩인지 직접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재판 끝날 때까지 억지를 부렸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증인으로 불러 달라는 생떼

더 가관인 것은 피고인 당사자가 이런 생떼를 쓸 때, 그의 변호인들이 말려야 정상이다. 그런데 한 패가 되어 억지를 공동으로 부렸다고 해서 말들이 많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은 그들을 두고 하는 말이지 싶다. 갑자기 예수님이 하신 말씀 한 구절이 떠오른다. 거짓 선지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교계 지도자들을 비롯해 다수의 기독교인들이 보건 당국의 코로나19 교회 처방이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공 예배 외의 교회 모임 중지 권고를 기독교 탄압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것들은 정부가 권고하기 이전에 교회가 알아서 해야 할 것들이다. 세상의 변화를 기독교가 미처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명재 목사(본 신문 발행인, Ph. D)

기독교 추락의 끝은 어디인가?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이 다름 아닌 교회란 말들을 한다. 서구 유럽과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 기독교도 쇠퇴의 길에 들어선 것 같다. 사랑의 종교가 사랑을 잃었고, 겸손해야할 기독교가 겸손을 버린 결과이다. 그 중심엔 기독교의 이기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발행인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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