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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일 교수의 생활산책 (43) - 폄하(貶下)와 폄훼(貶毁)는 어떻게 다른가

기사승인 2020.07.08  22: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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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일(목원대 명예교수, 수필가)

문정일(목원대 명예교수, 수필가)

두 개의 단어 《폄하》와 《폄훼》와 관련하여 우리사회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가 있다. 유명한 역사분야 강사 설(薛)某씨가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할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이라고 할 수 있는 태화관(泰和館=일제강점기의 유명한 요리집 명월관의 부속건물)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그들이 그곳에 모인 이유는 마담 주옥경(朱鈺卿, 1894~ 1982)과 손병희(孫秉熙, 1861~1922)가 내연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양가의 후손들이 강사에 대하여 고소 운운하자, 해당 역사 강사는 "민족대표 33인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사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유족 분들께 상처가 될 만한 지나친 표현이 있었다는 꾸지람은 달게 받겠다"라고 말하면서도 해당 발언에 대한 정정의사는 내비치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서 화제로 등장한 말은 바로 ‘폄훼‘라는 단어였다. 여기에서 《폄하》와 《폄훼》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기로 하자. 두 단어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한자 ’폄(貶)‘은 ’낮출 폄‘으로 원래 “관직(官職)을 깎아 내린다” 즉 직위를 강등(降等)하여 재물[貝=살림살이]을 궁핍하게[乏]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사전적 정의로는 ①낮추다 ②남을 나쁘게 말하다 ③떨어뜨리다 ④덜다 ⑤떨어지다 ⑥물리치다 ⑦줄다 ⑧감(減)해지다 등의 뜻이 있다. 다른 한 편, ’폄훼‘의 ’훼(毁)‘는 ’헐 훼‘로서 ①헐다 ②부수다 ③제거하다 ④철거하다 ⑤이지러지다 ⑥일그러지다 ⑦무너지다 ⑧훼손하다 ⑨손상하다 ⑩비방하다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폄하》는 “가치를 깎아 내림”이고 《폄훼》는 “가치를 깎아내려 헐뜯음”으로 되어 있다. 어떤 이가 국립국어원에 “《폄하》와 《폄훼》는 어떻게 다른가?”하는 질의를 하였는데 국립국어원에서는 “두 단어가 모두 ‘가치를 깎아 내리다‘의 뜻이 있는데 ‘폄훼’는 ‘깎아내리다’에 더하여 ‘헐뜯다’의 의미가 있다”고 하면서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많은 경우, 거의 차이가 없이 쓰이고 있다“고 하였다 한다.

이상에서의 설명을 요약하여 정리하면 ‘폄하하다’는 ‘깎아내리다’로, ‘폄훼하다’는 ‘깎아내려 헐뜯다“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부연할 것은 ’폄하(貶下)하다‘는 ’폄(貶)하다‘로 사용해도 좋은 말인데 ’아래로 깎아내리다‘의 뜻을 표하기 위해 ’아래 하(下)‘를 덧붙여 ’폄하‘가 된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두 단어 《폄하》와 《폄훼》로 된 예문을 몇 가지 들어보기로 하자. 《폄하》의 경우를 보면, ①그의 진지한 노력의 결과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②그 화가의 나이가 어리다고해서 그의 작품까지 함부로 ‘폄하’할 수는 없다. ③다소 미흡하기는 하지만 그간의 현대문학연구가 이루어 놓은 성과는 ‘폄하’될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폄훼》의 예문을 들어보자. ① 그 정치인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폄훼’를 일삼았다. ②그가 죽은 자를 ‘폄훼’하는 글을 쓸 리는 만무하다. ③그들에 대한 인상은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과장되거나 ‘폄훼’된 경우가 많다.

다음은 우리 언론에서 잘못 사용된 예문을 살펴보자. ①당 지도부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의 자율적인 결정은 ‘폄하’하면서 청와대에 대해서는 침묵을 보이는 것은 누가 봐도 우스운 일이다('ㅎ‘일보 기자수첩). ②벤처사업은 다소간 침체와 혼란이 있었다고 해서 마구잡이식으로 ’폄하‘하거나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ㄷ‘신문 시론). 위의 두 문장에 쓰인 “폄하”는 모두 “남을 깎아 내리고 헐뜯다”는 의미이므로 이때 쓰인 ’폄하‘는 ’폄훼‘를 잘못 표기한 것이 맞다고 본다.

최근 식자층이나 언론에서는 《폄하》나 《폄훼》를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신문기사 중에 “학력 때문에 내 작품이 ’폄하‘되는 것은 아닌가?”에서 '폄하’라는 말이 잘못 쓰인 것은 아니지만 이때는 '폄하‘보다는 ’과소평가'로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언어도 의복처럼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쓰인 어휘가 보기도 좋고 듣기도 좋으며 이해하기도 편하다.

문정일 gcilbonews@daum.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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