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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哀歌)] 70년만의 만남, 그리고 영원한 이별

기사승인 2020.06.21  17: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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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길(사단법인 평화철도 대표, 전 국회의원)

권영길(사단법인 평화철도 대표, 전 국회의원)

조해일.

70년대 사회비판 소설로 내 가슴을 때리던 작가 조해일.

나는 그 조해일과 1950년대 초, 지금은 초등학교로 불리는 국민학교를 같이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조해일과 권영길은 초등학교 동창생입니다.

조해일은 1941년생.
권영길도 1941년생.

그러니까 우리 둘은 동갑내기입니다.

그 조해일을 70년 만에 경희대 의료원 영안실에서 만났습니다.

남은 자와 가는 자의 만남이었습니다.

나는 조해일이 나의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걸 3년 전에야 알았습니다. 70년대 중반에 
조해일, 조세희, 조선작의 소설에 빠져있었는데 조해일은 작품으로만 났습니다. 조세희와는 30년 지기가 되어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미국 이민간 초•중•고 친구에게서 조해일이  ‘우리 동창’이라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사흘들이 병원 신세를 지는 투병중이라 조해일을 바로 만날 수 없어 몸 좀 좋아지면 만나자고 '역사적 만남(?)'을 뒤로 미뤘습니다.

우리 둘의 폐북에서의 첫 인사가 걸작이었습니다.

"야, 조해일이 너, 나 초등학교 동창이라며"가 건넨 말 전부였습니다.

"그래. 말 놓아서 너무 기분 좋다"가 조해일의 대답 글 전부였습니다.

걸작이라 할 만한 댓글이 아닌가요.

그런데 내가 움직일만하니까 이번에는 조해일이 입원했습니다.

"해룡이 가아, 내일 입원해서 수술 받는다는데 퇴원해서 나으면 너 만나자더라" 

화가의 길을 걸으려다가 붓 놓고 미국 이민 간 그 친구가 잠간 나온 김에 조해일 만난 뒤 내게 전해준 말이었습니다.

"해룡이라니… ?"

"가아, 본명이 해룡이 아이가. 소설 쓰면서 부친 이름이 해일이다"

"그렇나"

영안실 안내판에서 '조해룡' 글자를 보며 ‘문상도 못오겠구나’라며 미국에 있는 친구를 떠올렸습니다.

수술 받으면 곧 나을 거라던 조해일이 가버렸습니다. 

우리 둘은 꼭 만나야했습니다.

우선 공통분모가 많습니다. 

1941년 그는 만주에서 태어났고, 나는 일본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둘은 일제가 망해서 한국 땅에 돌아와 살게 됐습니다.

전쟁이 터지자 그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나는 지리산 산록에서 부산으로 와 '임시 수도' 부산생활을 했습니다.

우리가 다닌 '남부민국민학교'는 부산 서쪽 송도해수욕장 가는 길목에 있는 학교로 원래의 건물은 미군에게 징발당해 각 학년 학급 건물이 해안 가, 산비탈, 일제시대 공장 폐건물 등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천막도 있고 녹슨 함석지붕도 있고, 아예 바닷가 자갈 밭 교실도 있었습니다. 같은 학년도 각 반 교실이 3~4 km씩 떨어져있어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지만 서로들 얼굴 모른 채 졸업한 동창들이 많습니다.

휴전 후 학교 건물을 되돌려 받은 건 휴전 한참 뒤라 나와 조해일은 겨우 몇 달 본 교사 맛을 봤습니다.

내 기억에 남는 건 여자의 벌거벗은 전신 사진 뿐입니다.
미군들이 교실 실내 벽에 붙여놨던 거지요.
이 기억은 미군들이 길거리에서 어린 소년 구두닦이에게 구두를 닦으면서 '양공주'라 불린 20대 여성을 무릎에 앉히고 희희덕거리던 장면과 함께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6월 19일 타계한 소설과 조해일과 그의 대표작 <아메리카> 표지

조해일이 1974년 동두천 기지촌 여성들과 한미 간 문제 본질을 다룬 소설 '아메리카'를 발표했는데 조해일을 만나면 "우리가 어릴때 본 그 장면들이 영향을 미쳤냐"고 물어볼 참이었는데 그의 답을 못 듣게 돼버렸습니다.

나는 조해일에게 "우리 부산에 같이 안 가볼래?"라고 부산행을 권유할 생각이었습니다.

80이 되어서도 노동운동에 빠진 두 사내가 70년 전 그 곳, 전쟁 생채기로 얼룩져있던 저 1950년대 초의 부산 소년을 불러내고 싶어서였습니다.

교실로도 활용됐던 부산 남항 방파제 둑에 퍼지르고 앉아 자갈치 명물 꼼장어 구이 앞에 두고 "해일아! 한 잔 하자"고 외치며 소주 한잔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70년만의 만남이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6월 21일)이 조해일이 하늘나라로 떠나는 날입니다.

해일아!
해룡아!

잘 가라.

조해일 경희대 국문과 명예교수(소설가)는 6월 19일(금) 향년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으로는 미군부대 기지촌을 배경으로 삶의 비극을 드러낸 <아메리카>를 비롯해 <갈 수 없는 나라>, <뿔>, <무쇠탈>, <낮꿈> 등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1975년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겨울여자>는 베스트셀러로 영화화되기까지 했다. 그와 초등학교 동창인 권영길 전 의원이 친구를 보내고 슬픈 마음을 글로 남겼다. 조해일의 발인 날에...(편집자 주)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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