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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시평] 시민운동가의 정치권 진출

기사승인 2020.05.29  20: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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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오랜 주제이기도 하다. 양론이 팽팽한데 난 중립이다. 정확히는 중립이라기보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는 게 내 입장이다. 운동단체의 활동가가 정치권에 뛰어드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직도 순정파가 있어서 부정할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운동권과 정치는 근친성이 강한 관계에 있다. 허기사 세상 일이 정치와 무관한 게 있을까. 그래서 사람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우리의 현대사만 봐도 쉬 증명이 된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 해방 정국에서 정치 지도자가 되었다. 군문(軍門)에서 국가를 지키던 사람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한때 나라를 좌지우지했단 적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선인이 5월 29일(금)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기억연대 활동 당시 회계 부정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힌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시민사회운동권이 본격적으로 정치와 연을 맺은 것은 1987년 6월항쟁 이후로 봐야 할 것이다. 사실 그 전까지 민주화운동은 명확하게 나뉘어 있지 않았다. 사회 운동권과 정치권이 혼재해 있었다.

김대중 김영삼의 정치도 민주화운동이라고 했다. 문익환 계훈제의 재야활동도 민주화운동이었다. 장기간의 군사독재 아래 만년 야당이었던 정당과 재야 운동권이 호흡을 같이 한 시기이기도 하다.

1987년 6월 항쟁은 운동권이 제도 정치권에 진입하는 분기점이 되었다. 13대 대선에서 패한 야권에 쇄신론이 일었다. 운동권 일부는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다른 일부는 김영삼의 민주당으로 흡입되었다. 

물론 많은 활동가들은 운동단체에 그대로 남아 해 오던 일을 계속했다.  운동가들의 제도 정당 진출을 '흡입'이란 단어로 쉽게 표현했지만 찬반을 두고 치열한 내적 논쟁이 따랐다. 의론이 팽팽했다.

찬성하는 쪽은 활동 공간의 확대를 말했다. 반대하는 쪽은 운동을 출세의 발판으로 삼는다고 했다. 이 논의는 지금도 비슷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문제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87, 88년 어간에 제도권에 들어간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민민(민족 민주)운동을 했다는 이가 보수 정당에 들어가 그들의 홍위병이 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정당에 들어가 운동성을 확장하려 노력한 사람들도 있다. 

지금 여론을 달구고 있는 정의연대 전 대표 윤미향의 경우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의 정대협  운동 30년을 높이 평가한다. 그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정대협 운동을 발판으로 삼은 게 아니라 30년이라는 긴 기간을 그 운동에 헌신해 온 결과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윤미향이 누구처럼 지나온 삶과는 달리 극우세력의 주구가 되고 친일배로 훼절한다면 극력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지금 그의 등원을 반대하는 세력을 보면 알 수 있다. 일제와 자국 내 극우세력들...

오늘(5월 29일) 국회에서 윤미향 당선인이 기자회견을 했다. 그동안 그를 둘러싼 의혹들을 해명하는 내용이었다. 돈과 사람 관계는 처한 입장에 따라 해석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다툼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얘기다.

이명재 목사(본 신문 발행인, Ph. D)

내일이 21대 국회 개원하는 날이다. 어렵게 등원하는 만큼 윤 당선인은 더 열심히 의정을 살펴야 할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본과의 관계, 사회적 약자를 위하는 정책 발굴로 국민의 대표 역할을 잘 감당하기 바란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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