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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일 교수의 생활산책 (37) - 『뉴욕 타임스』의 《단체 부고장》

기사승인 2020.05.28  1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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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일(목원대 명예교수, 수필가)

문정일(목원대 명예교수, 수필가)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간지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는 5월 24일자(현지 시간 23일) 1면 기사에서 매우 참담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날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미국 전체의 사망자 수는 98,680명으로 1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 날짜의 『뉴욕타임스』가 제1면에 사망자 10만 명중에서 1%에 해당하는 1,000명의 이름을 광고나 사진 없이 전면기사로 가득 실어 공개하였다. 이를테면 이날의 『뉴욕타임스』의 제1면은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를 알리는 《단체 부고장(訃告狀)》이었다.

컴퓨터를 통해서 이날의 『뉴욕타임스』의 해당기사를 클릭하니 별도의 작은 창이 뜨는데 거기에는 “십만 명(One Hundred Thousand)”이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글이 달려있다. ”2020년 5월 하순 현재,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망한 미국의 인구는 100,000명에 육박했습니다. 이들이 거의 모두 3개월 어간(within a three-month span)에 사망하였으므로 하루 평균 1,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계산이 됩니다.“

『뉴욕타임스』는 23일(현지시간) 신문이 배달되기 전, 트위터를 통해서 ‘미국 사망자 10만 명 육박, 막대한 손실(An Incalculable Loss)’이라는 제목의 1면 기사를 공개하였으며 헤들라인 아래 첫줄의 내용이 더욱 충격적이다. “그들은 단순히 명부에 적힌 이름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들 자신이었다(They were not simply names on a list. They were us.)”라는 한 줄의 추모의 표현이 읽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광고가 매우 인상적인 것은 게재된 1,000명의 명단에 사망자의 특징과 직업 등 간략한 인물소개도 덧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조단 헤인즈(27·아이오와): 유쾌한 미소를 띤 너그러운 청년/ 로날드 루이스(68·뉴올리언스): 뉴올리언스의 전통 공연가/ 알란 룬드(81·워싱턴): 놀라운 귀를 가진 지휘자 등등.

연전에 대학동창 넷이서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9(舊용산동 1가 8)에 있는 『한국전쟁기념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전시관을 돌아보고 있는데 어느 벽엔가 ”한국전쟁 전사자명단“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나에게는 외가 쪽으로 외숙 네 분이 계셨는데 막내 외숙이 한국전쟁 중에 전사한 사실이 있어서 ‘혹시나!’하고 명단을 훑어나가다 보니 ”변수희(卞秀熙, 1928~1950)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외숙과 작별한 지 근70년 만에 뜻밖의 장소에서 외숙의 흔적을 찾게 된 것이 반가우면서도 한 편 가슴이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었다.

외숙은 1948년 국군이 창설되기 직전인 1947년 여름, “조선경비대(대한민국 국군의 前身)”에 입대하여 지금 육국사관학교가 있는 태릉의 某부대에서 ‘나팔수’로 복무하였다. 6.25전쟁이 터지던 날은 주일이어서 주말 외출 중, 우리 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집근처에 있는 ‘주재소(駐在所=現파출소)’로 외숙을 찾는 전화가 와서 다녀오더니 전쟁이 일어났으니 즉시 남하하여 특정 지역에서 부대에 합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서둘러 떠나간 직후,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뉴욕타임스』의 “단체부고장”에 이름을 올린 1,000명의 명단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이들이 아니고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사망이어서 우리에게 주는 죽음의 의미가 전사자의 그것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바이러스에 의해 죽는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참으로 속절없는 허무감을 느끼게 한다.

『뉴욕타임스』의 ‘단체 부고장’의 기사와 때를 같이하여 외신을 통해 들려오는 걱정스런 뉴스가 있다. 5월 25일은 미국의 현충일이어서 5/23(토)~25(월)의 주말연휴를 맞아 해변과 식당과 주점으로 대규모 인파가 몰리면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이 우려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한국에서 멀다고 하나 이제 전 세계는 한울타리에 있는 ‘지구촌’이므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남의 일이 아니다. 여전히 수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하는 이런 비상시국에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고 여유를 부리는 인파에게서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을 본다. 인류를 가장 많이 죽인 것은 핵전쟁이 아니고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미국인들에게 어서 속히 전해주어야 하겠다.

문정일 gcilbonews@daum.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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