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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시평]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을 보고

기사승인 2020.05.26  11: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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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이럴 때가 제일 난감하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듣고 느낀 첫 생각이다. 목적은 같되 방법론에 차이가 있으면 논쟁을 통해 정리하면 된다. 늘 그렇지는 않지만 다수의 의견으로 정리된 결론에 전체 구성원이 따르면 된다. 

보통 분쟁은 대의(大義)를 제쳐두고 소의(小義)에 집착할 때 일어난다. 소의는 인간적 범주에 토대하는 경우가 많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역사성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일제 36년의 역사를 방기하는 것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정의연(정의기억연대)을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다. 30년의 투쟁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용수 할머니의 두 번에 걸친 기자회견을 보면서 느낀 점은 몹시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내용도 그렇지만 이해의 폭도 관계 되리라.

나만의 현상이 아닌 것 같다. SNS에 오르내리는 의견들을 살펴보니 많은 사람이 내적 혼돈에 휩싸여 있다.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는 진영논리 위에 있는 것이어서 사람들의 생각이 덜 나뉘어 있었다. 일본에 대한 관점은 명확했다.

그런데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뒤 진보 진영에 속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다양하게 개진되고 있는 것을 본다. 표현을 좋게 해서 '다양하게 개진'이라고 했지만 갈가리 찢기어지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진영 내 분열이다.

▲정의연 후원금 유용 의혹을 폭로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2차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이한형기자)

어떤 페이스북 친구는 이용수 인권운동가를 공격하는 사람과는 페이스북 친구를 끊겠다는 경고까지 날릴 정도이다.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을 놓고 다시 한 번 내홍을 겪고 있는 예가 될 것이다. 분열 없는 통합은 의미가 없는 것인가.

위에서 대아와 소아 얘기를 했지만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내용에서 대의보다도 소의에 집착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없지 않겠지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소의는 대의에 복무해야 하는데 말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대의는 일본과의 관계와 연결되어 있다. 소의는 당연히 이용수 할머니의 개인적 서운함과 연관된다. 개인적 서운함에는 운동의 주도권 문제와 돈 문제가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 붙는다. 많이 보아 왔다.

정신대대책위부터 정의연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어려움은 역사적 의미를 견지하는 일이었다. 일제는 가해자요 위안부와 정신대는 피해자라는 등식이었다. 강자 일본과 우리나라 보수정권을 상대로 이 등식을 관철해내기란 달걀로 바위 치기에 비유되었다.

30년을 정의연은 그들과 투쟁을 해 왔다. 그 투쟁에서 실무자들의 독단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서운함을 안겨 줄 때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후원금의 용처에 대한 의구심 살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일제에 대한 역사 심판 위에 자리할 수는 없다.

이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정의연과 윤향미 활동에 대한 비수는 될 수 있을지언정 역사적 대의에 충실한 것은 되지 못했다고 본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했다. 이 역사관은 처절한 일제하에서 나온 것이지만 아직도 유효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특히 일본과 관계 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이용수 할머니는 이 점에서 아주 빈핍함을 드러내고 있다. 본인은 위안부 문제는 일제의 죄악이고 그들로부터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각론을 들어보면 이런 말은  매우 공허하게 들린다. 무화(無化)되어 버리고 만다.

수요 시위 그만 두어야 한다. 일본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 교육을 시켜야 한다... 일본이 바라던 것이고 우리나라 친일 보수 세력이 좋아할 말이다. 이것은 다수 국민의 동의를 얻기 힘든 주장이다.

이용수 할머니의 회견장에 곽상도 의원의 얼굴이 비쳤다는 말이 들리고, 거기에 극우 인사들이 함께 했다는 뉴스는 위안부 할머니 이용수의 위치를 더욱 나약하게 만들고 만다. 곽상도의 걸어온 길을 조금만 살펴봐도 쉬 알 수 있다.

혹자는 역사는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따라서 민족과 진영 이전에 사실을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 같다. 그러나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에서 한 말은 정의연과 윤미향의 입장에서 볼 때 다툼의 소지가 다분한 것들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정신대 문제를 증언하기 위해 외국을 방문했을 때 대책위 실무자가 할머니를 끌고 다녔다고 했다. 그러나 그 때 현장에서 있었던 다른 사람은 극진히 모시고 다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또 정신대대책위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30년 동안 이용해 먹었다고 했다. 일본과의 싸움에서 30년 동안 '이용해서' 역사를 바로 세울 사안이라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조국 해방을 위해 기꺼이 이용당한 사람들 아닌가.

이런 예를 드는 것은 다툼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정의연과 윤미향은 제대로 변명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용수 할머니가 일방적으로 그들을 공격하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 극우언론과 검찰까지 공격 대오를 형성하고 있으니 독 안의 쥐 격이다.

이명재 목사(본 신문 발행인, Ph. D)

어떤 수준의 운동이든 내적 분란은 치명적이기 쉽다. 외부의 공격은 조직의 단결을 가져오지만 자체 갈등의 결과는 운동의 종말을 가져온다. 정의연 30년 투쟁이 역사에 부정적으로 기록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무슨 좋은 방안이 없을까.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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