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송년 수상] 송년회 시계 선물 이야기

기사승인 2019.12.08  22:06:13

공유
default_news_ad1

-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한해를 보내고 또 새해 맞을 준비를 해야 할 때이다. 이즈음마다 연말연시(年末年始)란 표현을 쓴다. 연말에 만남의 장이 여럿 마련된다. 이른 바 송년회다. '보낼 송(送)'에 '해 년(年)'. ‘묵은해를 보낸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주로 망년회(忘年會)란 말을 썼다.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이것이 송년회로 전화(轉化)되어 사용되고 있다. 막연히 생각해 보기는 '망' 자가 ‘망할 망(亡)’을 연상케 해서 송년회를 애용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우리는 비슷한 발음에서 오는 글자를 피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빌딩 층 수에서 '4'를 뺀 경우를 들 수 있다. 1,2,3,5,6... . 4층을 피한 것은 아라비아 수인 ‘4(사)’가 ‘죽음 사(死)’ 자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사설이 길어졌지만 올해도 몇 군데 송년 모임엔 꼭 참석하려 한다. 지난 금요일(12월 6일) 고등학교 동기회 송년회가 서울 한복판 공군회관에서 있었다. 150 여 명이 참석해서 오랜만에 우정을 도탑게 나누고 돌아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40년 이상 지났고 친구들은 환갑을 지난 연치를 갖고 있지만 건강한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더욱이 장가들을 잘 가서 어여쁜 부인들과 함께 온 친구들에게서 행복감을 읽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정기총회를 마치고 여흥의 시간엔 갖고 있는 끼들을 맘껏 발산하는 것이 마치 고등학교 학창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개중엔 평소 얌전을 빼던 친구가 다른 사람처럼 돌변해 좌중을 쥐락펴락해 눈을 의심케 만들었다.

이런 송년 모임에 참석하고 돌아올 때면 기념 선물을 한두 개씩 손에 쥐어 준다. 몇 년 전 참석했을 때는 도자기 선물을 갖고 왔고, 또 그 이태 뒤인가에는 은수저 세트를 선물로 받아왔었다. 올 송년모임엔 시계 선물을 고지(告知)했다.

2019년 고등학교 동기 송년모임에서 선물로 받은 손목시계. 고등학교 입학식 날 시계에 얽힌 소화(小話)를 생각하고 미묘한 향수에 젖었다.

시계가 사라져 가는 때에 왠 시계선물이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전 국민이 휴대폰 하나씩을 소지하고 있는 때에 손목시계 선물은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휴대폰엔 시뿐 아니라 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주는 기능이 있지 않은가.

초로의 친구들이 향수(鄕愁)를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순진무구했던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 손목시계 하나로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향수의 작은 부분은 채워 줄 수 있을 것 같다. 40 여 년 전엔 살기가 괜찮은 집 자제들만이 시계를 차고 다녔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친구들이 40년 이상이 지난 지금 ‘특별하게’ 그 때의 꿈-손목시계를 갖고 싶은-을 이룬 것이 된다. 선물에 이런 추측성 해설을 깃들이는 것도 유별나다. 어떻든 손목시계 선물을 생각해낸 임원들을 칭찬하고 싶다.

고등학교 송년 모임이라고 했다. 기념 선물로 준비한 손목시계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다고도 했다. 하지만 40년 세월을 되돌리는 향수를 일정 부분 불러일으키는 매개물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 두 소재의 단어-고등학교와 손목시계-는 내겐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인(動因)도 여기에 있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에 갈 수 없었던 나는 어린 나이에 생활 전선으로 뛰어 들어야 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이유가 가장 컸다. 어린 나이에 닥치는 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생존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남의 밑에서 일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시간을 지키는 것이었다. 지금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지천으로 늘려 있는 것이 시계인데, 시간을 몰라 일하러 가는데 어려움을 겪다니! 나는 중학생 나이 때부터 혼자 자취를 했다. 어떤 때는 두어 시간 전에 일터로 갈 때가 많았고, 또 한 시간쯤 지난 뒤 출근하여 주인에게 혼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 때 주인의 배려로 구입한 것이 오리엔트 손목시계였다. 중고라고 하지만 쓸 만했다. 주인의 친구가 전당포를 운영하는데, 오래 지나도록 찾아가지 않은 것을 헐값에 가져 왔다고 했다. 주인은 무용담 들려주듯 말하며 내 손목에 채워주었다.

이 오리엔트 손목시계 덕분에 시간을 지켜 일터로 나갈 수 있었으니 나에겐 은인인 셈이다. 학교 다니는 꿈을 자주 꾸었다. 틈틈이 공부하여 고입 자격 검정고시를 보게 되었고 중동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준비 없이 학교부터 간 게 실수였다고나 할까.

입학식 날이었다. 당시 나는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에 있는 뚝방의 판잣집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궁색 맞은 얘기가 될 줄 알지만 입학식 날 차비가 없었다. 주위에 빌릴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이내 포기했다. 빌려 줄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고등학교 동기 송년모임에서 기념선물로 받은 손목시계. 뒷면 중동고를 상징하는 사자 상 위에 '이명재'라는 글자가 깨알처럼 박혀있다.

무엇보다 갚을 자신이 없었다. 첫 입학식 날 결석하면 3년의 학창 시절이 어려움의 연속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혈혈단신의 신세가 이런 상황까지 만들다니! 비상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버팀목이었던 오리엔트 시계!

그것을 갖고 아침 일찍 전당포로 달려갔다. 잡히면 2백 원까지 빌려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때 버스 요금이 학생은 15원인가 할 때이다. 순간의 지혜로 위기를 극복했다며 스스로 위로했지만 시간 때문에 또 마음 죌 일을 생각하니 긴장감이 몰려왔다.

난 그 때 전당포에 맡긴 오리엔트 시계를 다시 찾지 못하고 말았다. 공부 하랴, 생활 앞가림하랴 형편이 나아질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학생의 힘겨운 일상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생존을 위한 전쟁 말이다.

올 고등학교 동기 송년모임 선물로 손목시계를 준비하니 많이 참석하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참석자의 이름을 시계에 일일이 새겨준다는 '달콤한' 문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친구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더해 손목시계 선물에도 솔직히 마음이 갔다.

이명재 목사(본 신문 발행인, Ph. D)

45년 전에 전당포에 잡힌 시계를 찾는 기분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덤으로 아내의 것까지 받아 차고 기분 좋게 송년 모임 문을 나섰다. 한동안 이 손목시계가 내 몸의 한 부분처럼 같이 움직이게 될 것이다. 큼직한 시계가 더 든든하게 보인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