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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김종길의 '겨울비'

기사승인 2019.12.01  21: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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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비
                        - 김종길 詩

겨울비 후두기는 저녁 어스름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선다
일 년에 한두 번 얼굴을 맞대는
옛 동기생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동기생들의 반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지금 십여 명이 서울에 살고 있지만
한두 사람은 연락이 닿지 않고
한두 사람은 병석에 갇혀 있어
모처럼 모인다 해도 반밖에 나오질 않는다

그러나 가장 허물없는 사이가 그들이다
지금은 백발에 주름 잡힌 얼굴들이지만
모이면 모두 육십 년 전으로 되돌아가
버릇없는 중학생이 되어 즐겁기만 하다

망년회란 한 해를 잊자는 것인가
아니면 나이를 잊자는 것인가
아니면 그 두 가지를 다 잊자는 건가
겨울비 후두기는 저녁 어스름
늙은 동기생들을 만나러 집을 나선다

 

*송년모임 날짜와 장소가 속속 답지한다.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볼 수 있는 지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모임 장소는 주로 서울, 꼭 가봐야 할 곳을 면밀하게 따져 체크를 한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길 잃은 들짐승이 야산을 방황하듯 이 겨울비도 때를 놓치고 방황하다가 지금에야 내리는 건가. 이 해가 가기 전에.... 갑자기 김종길 시인의 '겨울비'가 떠올랐다. 지금은 이 세상에 있지 않지만, 그의 시는 먼저 쉬워서 더 눈이 갔다. 시어(詩語)도, 이미지도, 운율까지도 너무 쉬워 도리어 자연스럽다. 겨울비 내리는 저녁 어릴 적 친구들과 망년회를 갖기 위해 집을 나서는 노 시인의 모습이 확연하게 연상된다. 온전한 문장들로 구성된 시여서 언어의 농축이 빈약한 듯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운율이 그 점을 잘 보완해 주기 때문이다. 수미상관(首尾相關) 기법 가운데 같이 들어 있는 '후두기는'은 시인이 만든 단어이다. 조지훈이 ‘승무’에서 만든 ‘나빌레라’처럼.... 김종길의 겨울비는 제법 굵은 빗줄기였던 같다. '후두둑 소리 내며 두들기는' 정도의 뜻으로 새기면 되겠다. 오늘 같이 초겨울 비 내릴 때 김종길의 시를 웅얼거리며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삶의 한 재미가 아닐까(耳穆).

연분홍 단풍잎으로 아름답게 수 놓은 지 얼마 안 지났는데,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가 단풍에 총질을 하고 있다(사진=NEWSIS)

편집부 gcilbonews@daum.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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