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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뮤지컬

기사승인 2019.11.29  08: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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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소년교도소 아이들의 이야기, "MUSICAL 안녕! 내일, 마지막 이야기 길"

육중한 문을 지나 강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안내 팸플릿에는 '대강당'으로 표기해 놓았지만 '대(大)'에 길든 제 눈에는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피와 면적도 상대적이겠지요. 일 년에 한 번 여는 행사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멀리서 어렵게 온 가족들, 손님맞이로 바쁜 직원들, 교정위원들, 봉사자들 그리고 이 행사가 열릴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은 (사)제로캠프와 (사)공공협력원 관계자들까지...

여러분들은 감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위에 열거한 참석자들의 하는 일에서 단초를 꺼집어낼 수 있겠는지요. 그렇습니다. '교정위원들'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도소와 관계있는 단어지요.

오늘(11월 28일) 오후 2시에 김천소년교도소 강당에서 뮤지컬 공연이 있었습니다. 전문 뮤지션들이 위로 차 방문해서 하는 공연이 아닙니다. 교도소에 수용되어 생활하는 소년수(少年囚)들이 주인공들입니다.

그들이 일 년 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선보인다는 거예요.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닌 뮤지컬로 말이지요. 제목이 뭔지 아십니까. 온전한 명칭을 적어 볼게요. “MUSICAL 안녕! 내일, 마지막 이야기 ‘길’”

본제목은 'MUSICAL 길'이 될 겁니다. 중간에 들어간 수식어들이 의미하는 것은 뭘까요. '안녕, 내일, 마지막.' ‘안녕’은 갇힌 세상, 어두운 공간과의 영원한 이별을 뜻합니다. ‘내일’은 희망을 암시하구요, ‘마지막’은 죄 된 삶의 끝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소년 수형자들의 바람을 담고 있는 제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을 되돌아봅니다. 사소한 죄일지언정 짓지 않고 온전히 살아온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뮤지컬 길'은 나의 얘기, 우리의 이야기여서 가슴을 파고 들었습니다.

모두에게 너무나 친근한 탤런트 최불암 씨는 이번 공연을 후원한 (사)제로캠프 이사장의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그가 인사말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다 죄를 짓고 살아가는 죄인이다". 울림이 적지 않습니다. 

무슨 죄를 짓고 이곳에 갇혔는지는 모릅니다. 등장한 아이들의 얼굴은 착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한 번의 실수로 뼛속 깊이 아로새길 경험을 했다고나 할까요. 무대에 오른 아이들도, 주목해서 보는 관객들도 이 시간만은 죄와 무관해 보입니다.
연출을 맡은 임지상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 뮤지컬의 줄거리를 다음과 같이 들려주더군요.

"어느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에서 수업은 시작됩니다. 오늘 수업은 연상 게임입니다. 인물에서 인물로 넘어가며, 단어 또한 그들의 기억 속 경험과 감정으로 연결되어 갑니다. 그들은 넘겨진 단어들의 이면에 담겨진 의미를 찾아내게 되고 수업은 끝이 납니다. 그들에게 남은 앞으로의 길,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등장인물들이 자신 있고도 리얼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때론 너무 감정에 몰입하여 눈가에 물기를 비쳤지만 뮤지컬이라는 궤도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보는 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이 행사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격려사를 한 분이 소감의 말에서 엄격, 통제, 교육이 능사가 아니라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을 통한 인성 함양이 중요하다는 걸 제로캠프를 통해 더 절실히 느꼈다고 한 말에 공감이 갔습니다.

아닌게아니라 뮤지컬 외에도 아이들의 감성을 총합한 여러 가지 공연이 아이들뿐 아니라 관람객들의 마음을 환하게 뚫어주는 '길'이 되었습니다. ‘프로페셔널’이라고 하면 과찬일까요. 아닙니다. 비보이, 난타, 사물놀이, 오카리나를 볼 때 더욱 그렇습니다.

조성기 황석영 등 작가의 소설에서 교도소 안을 부정적으로 그린 적이 있지만 그것은 특별한 경우에 속합니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일들이 그 안에서 더 많이 일어나고 이어집니다. 오늘 행사에 나와서 말로 몸짓으로 그리고 눈물로 무대를 수놓은 아이들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지도한 선생님들, 교도소 직원들, 봉사자들, 후원자들.... 그 맨 앞자리엔 오늘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자리하고 있겠지요. 고대의 한 성현은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상황이 이 아이들을 죄 짓게 했지 뜯어보면 악한 아이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김천소년교도소 양동석 소장은 행사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늘 무대에서 보여주는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와 몸짓 속에는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미래를 향한 고뇌의 흔적들이 담겨 있습니다....따스한 사랑으로 아이들이 새롭게 걸어가고자 하는 '길'을 환하게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사)제로캠프 이사장으로 8년이라는 기간을 소년 수형자 섬김으로 일관하고 있는 팔순의 최불암 씨는 이렇게 격려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김천교도소 강당의 변화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행사를 표 나지 않게 도운 분들처럼,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야 할 일로 생각하며 실천할 때 아이들의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수고하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관람을 마치고 교도소를 나왔습니다. 초겨울 날씨답지 않게 사위(四圍)로부터 포근함이 몰려왔습니다. 오늘의 공연이 특별한 것 같지만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란 생각을 했다. 아이들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교도소 앞의 ‘길’이 뻥 뚫린 것 같았습니다(글/이명재 목사).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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