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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여사가 별세하셨군요

기사승인 2019.11.26  15: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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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11월 25일(월) 세상을 뜬 김영주 여사는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외동딸이자 시인 김지하의 아내이다. 향년 73세(사진=국민일보)

만추의 계절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마당 목련나무의 잎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가볍게 내린 비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여름 굵은 소낙비도 거뜬하게 버텨낸 잎사귀들인데... 시간의 흐름 앞엔 장사가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며칠 후 있는 통일 관련 학술회의에 발표할 원고를 정리하느라 야밤까지 씨름을 했습니다. 그때 김영주 여사가 별세했다는 부음이 날아들었습니다. '김영주' 그러면 잘 모르시겠지요. 소설가 박경리의 무남독녀, 그러면 조금은 감이 잡힐 것입니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 말입니다. 지조 있는 삶을 살다가 가셨지요. 그의 무남독녀이니까 유일한 혈붙이 여식(女息)이란 얘기가 됩니다. 김영주를 획정하려면 그의 남편을 말하는 것이 좋겠군요. 김영주의 남편은 박정희 군사 독재 때 저항시인으로 유명한 김지하입니다.

일찍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 김지하에게서 저항 문학의 세례를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대학교 다닐 땐 그의 처녀 시집 <황토>를 찾기 위해 도서관과 청계천 헌책방을 이 잡듯 헤집고 다닌 적도 있습니다. 그 시집은 초판을 찍어내자마자 곧 판금도서가 되었었지요.

40년 이상이 지난 이야기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지금도 뚜렷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황토>를 서울 신설동에 위치한 동대문시립도서관에서 어렵게 발견하고 짜릿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미처 치우지 못한 책이 제 손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되어 감옥살이를 하다가 박정희가 죽은 직후 가석방으로 풀려나고 또 신군부 정권의 심기를 건더려 재수감되는 등 김지하는 저항시인의 면모를 한껏 발휘하며 행동하는 지식인 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필치는 직설적이면서도 예리했습니다.

아마 노태우 정권 말엽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신문에 쓴 그의 칼럼은 과히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란 제목의 글로 기억합니다. 당시 군사정권의 연장 음모에 맞서 분신과 투신 등 온 몸으로 저항한 학생들 뒤에 죽음의 배후 세력이 있다며 비난한 글입니다.

무장해제 당한 탈영병처럼 김지하의 도 넘는 언행은 민주화 운동 동지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래도 심약한 그를 이해하려 했습니다. 한참을 애써 외면하고 살아왔습니다. 2014년 말인가요? 제18대 대선 때였습니다. 그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지면을 장식했더군요.

그도 무척 외로웠을 것입니다. 과거의 축적된 경험을 먹고 사는 게 인간인데, 김지하는 그것을 흔적도 없이 날려 보냈으니까요. 그 사이 부인 김영주는 미술사, 그중 한국 불교 미술사를 공부해서 학위를 따고, 그 분야에 심취해 <조선시대불화연구>, <한국불교미술사> 등의 저서를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작가 박경리) 별세 후 강원도 원주에 있는 토지문학관 이사장 일을 보면서 문인들의 창작 활동을 음양으로 도와 왔습니다. 어머니의 유지를 받드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남편 김지하가 결혼 직후 구속되어 사형 선고까지 받는 바람에 옥바라지로 젊은 시절을 보낸 그녀의 후일담은 듣는 이의 눈가를 적시게 합니다.

김지하가 극에서 극으로 변신을 하지 않았다면 고인의 빈소가 후배들로 왁자지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김영주가 안치되어 있는 원주세브란스기독교병원 장례식장은 의외로 쓸쓸하지 않을까 저어됩니다. 고희(古稀)를 넘으면 예전엔 상노인이라고 했지요. 그러나 지금은 백 세 인생을 논합니다. 73세로 세상을 뜬 것은 이른 감이 없지 않습니다. 고인의 안식을 빕니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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