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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빈스 베이저의 『모래가 만든 세계 : 인류의 문명을 뒤바꾼 모래 이야기』

기사승인 2019.11.17  13: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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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필(해양지질학 전문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본부장)

빈스 베이저 지음, 배상규 옮김 『모래가 만든 세계』(까치, 2019년 10월 출판)

평소 지질과 자원 관련 연구 분야에서 일하는 필자에게 책 제목은 거부할 수 없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었다. 모래는 항상 보아오고 익숙한 물질. 하지만 연이어 이어지는 다소 버거운 의미의 단어들. 세계, 인류, 문명... 스마트폰으로 책을 고르던 손끝이 더보기 링크를 따라간다. 지난 10여 년 현장의 경험들이 머릿속에서 하나 둘 떠올랐다. 
 
모래는 지구상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물질 중 하나이다. 닐 암스트롱이 달 착륙을 했을 때 만들어진 발자국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모래는 외계 행성에서도 발견된다. 길게 펼쳐진 해수욕장의 시원한 풍경에서부터 고사성어와 속담, 황사와 미세먼지를 전하는 기상 뉴스, 어쩌다 눈에 띄는 공사장 등, 모래는 일상 생활에서 익숙하게 접하는 물질이다. 그래서인지 아름답고 낭만적인 이야기를 지어낼 경우이거나 사소하여 부질없거나 아슬아슬한 느낌을 표현할 때 흔히 모래가 동원된다. 
 
모래는 크기와 형태가 매우 다양한 물질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성분도 다양하다. 그 덕에 색깔과 투명도 역시 다르다. 모래를 자세히 관찰하면 형태가 길쭉한 것, 둥근 것, 납작한 것, 네모진 것 등 제각각이다. 부드러운 것도 있고 거친 것도 있다. 일반적으로 자연계에서 생성되는 모래는 오랜 기간의 기계적, 화학적 풍화작용을 받은 광물질 알갱이로서, 대부분 석영이라는 광물로 이루어져 있다. 풍화작용이 이루어지는 장소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풍화작용이 일어나는 시간이 짧을수록 모래에는 장석, 운모 등과 같은 다른 광물이나 광물의 혼합체인 암편들이 많이 섞여 관찰되기도 한다. 
 
자연계에서 모래는 산지, 하천, 사막, 해안, 심해 등 다양한 곳에서 발견된다. 사실상 거의 모든 곳에서 발견된다. 그래서인지 모래 알갱이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모래는 인간이 가늠하기조차 힘든, 매우 기나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자연물이다. 수 억 년의 지질시대를 거쳐 형성된 암석들이 지하 수 킬로미터에서 수 십 킬로미터 밑에서부터 지표면으로 노출되어 잘게 부서져 모래로 만들어진다. 아무리 짧아도 수 천 년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는 매우 오래된 시계이다.  
 
모래는 물과 공기 다음으로 우리 인간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천연물이다. 책의 저자는 인류의 고대 문명이 태동될 때부터 모래가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되었다는 기록을 논문, 보고서, 기사 등 1000여 편이 넘는 문서들을 근거로 제시한다. 고대 이집트 시대 건축물과 무덤, 신구 대륙 토착민들의 신화, 오래된 종교 문화재와 미술 작품들이 그 예로 제시된다. 
 
저자는 20세기 산업사회가 모래의 활용으로 가능했다는 다소 과감한 견해도 내놓는다. 15세기에 모래로부터 만들어진 유리는 인류의 자연관 또는 우주관을 획기적으로 전환한 현미경이나 망원경의 발명을 가져왔다. 그 결과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현대적인 생산 능력을 갖춘 대량 산업사회로 이어졌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원료 생산지와 소비지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연결, 집중된 노동 인력의 지속적인 유지와 관리 등에 필요한 대도시, 고층 빌딩, 교통망, 위생적인 주택, 휴양지 등을 건설하는 데 모래가 주원료로 사용되었음을 알리는 참고 자료와 현장 기록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21세기 인류가 이룩한 세계적인 문명과 모래의 관계를 설명하는 저자는 심도있고 폭넓은 경험과 관심을 선사한다. 저자의 지식과 이해는 지질학에 머무르지 않고 첨단 기술과 기기에까지 이어진다. 반도체를 만드는 고순도 실리콘 제조 기술, 세계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바꾼 수압파쇄 기술, 해빈 양생과 관련된 지질 및 공학 기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산림조성 기술, 콘크리트 제조 기술 등의 첨단 기술과 모래와의 관련성 등, 저자는 마치 빙판 위를 종횡무진하는 피겨 스케이터처럼 이리저리 독자의 시선을 이끌어 간다. 마침내 저자는 넘쳐나는 지식과 방대한 자료에 대한 마지막 분출 욕구마저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쉬어가는 코너’를 만들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모래의 색다른 용도(피부 관리, 법의학, 종교 의식, 예술 작품)를 소개한다. 
 
이 책의 저자 빈스 베이저(Vince Beiser)가 스스로를 자유기고가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책을 읽고 난 후 필자가 받은 느낌은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 여행가, 인류 공통의 세계적 사안을 조사하고 관찰하는 문명 비평가이자 모래라는 주제에서는 관련된 여러 분야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탐구자이기도 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단순한 자료 정리 결과나 모래라는 주제의 가벼운 교양서로 분류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오히려 오랜 기간 인류의 발전과 함께 활용된 모래와 관련된, 세계적 문제들을 발굴하고, 그 문제들의 배경과 인과관계를 인문, 사회, 정치, 경제, 과학, 기술 등 폭넓은 관점의 자료 분석을 통하여 추적하고 조망한 결과이다. 게다가 저자 자신이 고민 끝에 얻어낸 제언과 함께 엮어졌기에 차라리 한 편의 연구 보고서이자 논고라고 여기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오랜 시간과 넓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많은 이야기들로 인하여 책의 분량이 제법 많았지만 필자에게는 이 책의 내용이 결코 지루하거나 식상하지 않았다. 상식적이지 않은 일상으로 점철된 현장의 긴박함은 차분하고 폭넒은 객관적 자료들에 의하여 책 전체의 진행에 이따금 박진감을 주었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제시된 저자의 결언은 방대한 그의 지적 여정을 따라 한 동안 같이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하여 뿌듯함까지 선사하였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개별 자원이 아니라 모든 자원을 신중하고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편집부 gcilbonews@daum.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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