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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이외수의 '입동'

기사승인 2019.11.09  15: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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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외수(소설가, 시인)

         입 동

                   이외수 詩

달밤에는 모두가 집을 비운다.

잠 못 들고

강물이 뜨락까지 밀려와

해바라기 마른 대궁을 흔들고 있다.

밤 닭이 길게 울고

턱수염이 자라고

기침을 한다. 끊임없이

이 세상 꽃들이 모두 지거든

엽서라도 한 장 보내라던 그대

반은 잠들고 반은 깨어서

지금 쓸려가는 가랑잎 소리나 듣고 살자.

나는 수첩에서 그대

주소 한 줄을 지운다.

* 입동(立冬)은 겨울이 들어선다는 말이다. 와동(臥冬)이라고 표현하지 않은 선조들이 고맙다. 확실히 우리 조상들은 희망을 품고 살았다. 겨울이 와서 눕는 것이 아니라 서 있다니…. 겨울이 사람과 함께 서서 호흡하는 것이다. 얼마나 긍정적인가. 소설가 이외수가 시를 발표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외수는 시집을 세 권이나 낸 시인이다.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수필가이기도 하고 문학평론가이기도 하다. 문학에 대해 완전한 경지에 도달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의 시 ‘입동’은 행간에서 분위기를 읽어내야 한다. ‘입동’이란 제목을 단 것이 이상할 정도로 시어들이 생소하기만 하다. 입동은 겨울이 시작되는 절기이다. 현미경으로 이 시를 들여다보면 입동과 멀이 떨어져 있는 단어는 하나도 없다.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새벽 서리가 진을 칠 때 으스스함과 함께 쓸쓸함까지 느끼게 된다. 이 시의 주제는 홀로 있음에서 오는 외로움이다. 입동을 외로움과 등치시키고 있다. 달밤, 집을 비운다, 밤 닭, 턱수염이 자라고, 기침을 하고, 엽서라도 한 장 보내라던 그대, 가랑잎, 지운다…. 시란 절망에 가두는 철조망이 아니다. 대궁을 흔들고 있다, 길게 울고, 끊임없이, 깨어서, 듣고 살자…. 겨울을 준비하고 이겨내며 새봄을 맞자는 재기(再起)의 시어들도 수두룩하다. 시제(詩題)를 겨울을 세우다는 뜻인 입동(立冬)으로 한 이유와 연결되지 않는가(耳穆).

사진 = 정가네 동산 정윤영

취재부 daum.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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