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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폐쇄적인 도서관 운영, 과연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는 것인가

기사승인 2019.10.31  23: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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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관계가 없는 사람은 입실이 허락되지 않는다며 퇴실하라고 했다. 학교가 정한 원칙이란다. 쫓겨나다시피 나오긴 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진은 횃불트리니티대학원대학교 도서관 입구.

이런 일은 기자를 곤혹스럽게 한다. 하늘 보고 침 뱉는 식이 되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교계의 잘못을 지적하면 대부분의 교인들은 좋지 않게 받아들인다. 어떤 때는 이단을 보듯 냉소한다.

허나 잘못을 덮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좋은 예가 된다. 1517년 교회의 부패상을 제 식구 감싸기라는 식으로 생각했다면 종교개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10월 31일) 볼일이 있어서 온누리교회에 들렸다. 저녁 식사를 하고 급히 올릴 기사가 있어서 교회 내 커피숍으로 갔다. 허나 노트북 전력이 다 되어 어디서든 선을 연결해야 했다.

커피숍 근처에서 전원을 찾아 노트북과 연결했다.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글을 올렸다. 집회 봉사자들이 도서관에 가면 좀 편히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조언했다. 미처 그걸 몰랐구나!

고마운 마음으로 도서관에 가서 근무하는 젊은이에게 사정을 얘기했다.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록을 기록한 뒤 입실을 허락 받았다. 작업을 편안하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작업을 시작한지 10분쯤 지났을까. 다른 근무자(이 근무자는 내가 신분증 맡기고 입실할 땐 자리에 없었음)가 다가오더니 학교(횃불트리니티대학원대학교)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물었다.

방문객이라고 말하고 급히 작업할 게 있어서 입실했다는 것을 말했다. 물론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록까지 기록했음을 밝혔다. 일이 급하니 사정을 봐 달라고 읍소하다시피 했다.

단호했다. 안 된다는 것이다. 학교의 원칙이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할 원칙이어야 하는데, 원칙을 위해 사람이 있는 셈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사회가 떠올랐다. 율법에 결박되어 믿음과 인간성을 상실한 그 유대사회 말이다. 예수님도 이런 사회를 바꾸시기 위해 복음과 사랑을 갖고 오시지 않았는가.

횃불트리니티대학원대학교 도서관 입구에 '학교 관계자 외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한다'는 안내판을 갖다 놓았다.

요즘 대학들은 주변의 지역 사회와 함께 호흡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학교 공간을 이용하게 한다. 도서관도 개방하고 심지어 도서 대출까지 해 주며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그런데 기독교 대학을 표방하는 곳이 이렇게 폐쇄적으로 도서관을 운영하다니... . 정말 학교 관계자 외에는 도서관에 들어갈 수 없다는 내규가 있긴 한 걸까.

얼마 전, 전해들은 친구 조카 얘기가 떠올랐다. 미국 유학을 가서 당장 숙식처를 구하지 못했다. 어려운 사정을 경청한 학교에서 기숙사 방 하나를 개조해 한국에서 온 학생을 배려했다.

그 학교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진정 사람을 위한 대학이라며 그 친구는 감탄했다. 그 친구는 우리의 교육 당국이 과연 그런 상황을 만났다면 어떻게 했을까. 물어보나 마나다.

기독교가 많은 말을 듣고 있다. 입으론 사랑을 말하면서 행동은 그게 아닌 데에 기인하는 것이 많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실제 행동은 그렇지 못하다.

도서관을 쫓겨나다시피 하면서, 일반대학과 비교해도 한참 뒤지는 기독교대학들의 수준을 생각해 보았다. 기독교의 허점은 그 학교 도서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더 큰 문제다.

취재부 daum.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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