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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팔월의 위로(慰勞)

기사승인 2019.08.05  2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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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훈(시인, 총신대 교수)

        팔월의 위로(慰勞)

정규훈 시인(총신대 교수, 철학박사)

                               정규훈 詩

풋풋한 온기의 날이 언제였던가

태풍 안겨오는 뭉게구름에

내 비밀스런 청춘을 묻던 날이

 

휘어진 척추를 가누며 저 산을 넘던

어머니의 헌신이 내 작은 가슴에 사무쳐

빈 대야에 빗물을 채우면서 중얼거렸지….

“야채 몇 단 남은 손수레 끌며

이글거리는 아스팔트를 지나던

엄마 많이 힘드셨지요?“


오물 가득한 내 복부를 무지개처럼

현란한 욕망이 휘돌아 나갈 때 문득

펄펄 끓는 배반의 시절 속에 있음을 알았지

칠월이 밀고 구월이 끌고

열기가 밀고 냉기가 끌고

야망이 밀고 절망이 끌고

어미가 밀고 아비가 끌고

나는 마그마 같은 사랑에 떠밀려

산처럼 폭포처럼 눈물처럼

이 계절을 지나려면 난파선에 의지해

망망대해 떠도는 방랑자일 수밖에


친구가 그대를 속일지라도

연인이 그대를 떠날지라도

가족이 그대를 버릴지라도

 

이렇게 소리쳐라
  
이 외로움도 곧 지나가리라

이 뜨거움도 곧 지나가리라

이 두려움도 곧 지나가리라

내 푸르름도 그렇게 변색하듯이

내 등을 다독이며 팔월이 속삭이듯이….

 

* 요즘 세월을 의식하지 못하고 산다. 아직 7월인 줄 알았다. 그런 와중에 정 시인이 시 한 편을 보내왔다. 달이 바뀔 때마다 그 달을 주제로 한 시를 한 편씩 싣고 있다. 폭염의 세례를 받아야 하는 한여름, 과연 어느 시인이 시 한 편으로 우리를 위로할까. 정 시인이 '팔월의 위로'로 우리를 위로한다. 이 시는 팔월을 노래하고 있지만 온통 아노미(anomie)다. 하하,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그 속에 질서가 있고 절제된 사랑이 있고 미래를 바라보는 소망이 있다. 줄만 바꿔 문장을 배치한다고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클래식을 듣는 것과 같은 잔잔한 음악성이 우러나야 한다. 이게 시의 기본이다. 여기에 두운 요운 각운과 같은 언어의 묘미가 있어야 한다. 정 시인의 '팔월의 위로'는 이 모든 것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 시는 '팔월'을 노래하고 있지만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을 겸손하게 발현(發顯)한다. 그 어머니의 헌신으로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 중간중간 시인 자신에 대한 자학(自虐)이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건 아니다. 도리어 세상을 향해 '나'를 맘껏 소진하는 게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요 사랑이지 않을까. 이게 우리네 부모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시어를 쉽게 사용하고 있지만 쉽게 만들어진 건 아니다. '칠월', '열기', '야망', '어미'는 밀어주는 주체이고, '구월', '냉기', '절망', '아비'는 끌어주는 주체이다. 절묘한 단어 배치는 모두 등가의 위치에 있다. '야망'과 '절망'의 교합은 우리 삶의 보편적 법칙 아닌가. 효도의 대상을 '어미'와 '아비'로 표기한 것은 앞의 단어들과 음절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의 일단이다. '열기'가 밀고 '냉기'가 끌고.... '한기(寒氣)'가 아니라 '냉기(冷氣)임에 주의할 것!(耳穆). 

사진 = 정윤영

정규훈 gcilbonews@daum.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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