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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자라 보고 놀란 솥뚜껑

기사승인 2019.07.13  11: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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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며칠 전 오전 시간, 시청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 담당자와 상담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의 신호음이 진동으로 전화되어 전달되어 왔다. 모르는 폰 번호였다. 대화중이어서 받지 않으려다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조용히 받았다.

"이명재 목사님이시죠? 저는 한국저작권위원회 P인데요. 잠깐 통화할 시간이 되시는지요?"

점잖은 목소리였지만 어딘지 위엄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흠칫 몸이 움츠러들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또 저작권 도용 문제가 발생했음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곳에서 나에게 연락해 올 일이 없었다.

대화중이었지만 굳이 통화하려면 못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나 혹시 지은 죄가 있다면 그것의 인지(認知)를 연기하고픈 마음이었다. 상담 끝나는 대로 연락드리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시청 간 김에 한 군데 더 들려 일을 보고 나니 30 여 분이 지나고 있었다.

저작권위원회에서 온 전화는 내게 정말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또 무슨 사달이 일어났는지 겁부터 났다. 이태 전 저작권 보호 전문 법률사무소란 곳에서 온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교회 행사 포스터에 사용한 디자인이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불법 사용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작년에도 비슷한 일을 겪어야 했다. 신문에 작고한 유명 시인의 시를 소개하면서 그 시인의 사진을 함께 실었다. 사진은 대백과사전에서 가지고 왔다. 대백과사전은 만인에게 공개된 것이어서 사용해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한참 뒤 내용증명 우편물을 한 통 받았다.

사진은 저명한 사진작가의 작품으로 무단 사용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이었다. 명기된 연락처로 급히 전화를 했다. 고인이 된 사진작가의 아들이라고 했다. 모든 지적 재산권을 물려받았다고 했다. 법적 처리까지 가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일정액의 사용료를 송금하라고 했다. 그가 말한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부터 '저작권'이란 말만 들어도 겁부터 난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저작권위원회라는 곳에서 온 전화를 받았으니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을 끝내고도 몇 번을 망설였다. 전화를 넣어야 할지 아니면 기다려야 하는 건지... . 전화를 하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저장되어 있는 번호를 찾아 버튼을 눌렀다.

그가 먼저 알아보고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이상했다. 저작권 위반 문제라면 이렇게 반갑게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될 텐데... . 갑자기 정신이 흐트러졌다.

"예, 여쭤볼 게 있어서 전화 드렸었습니다. 권오순 선생님을 아시는지요?"

순간 마음이 푹 놓였다. 아마 상대방은 듣지 못했을 것이나 ‘휴우~’하는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이유가 있다. 권오순 선생에 대해 물어보는 것으로 볼 때 적어도 나의 저작권 위반 건은 아닐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 목소리도 평정심(平靜心)으로 돌아왔다.

지난 5월 17일(金) '문학의 집 • 서울' 주최로 열린 '금요문학마당 193' '그립습니다 권오순' 홍보 포스터

 "예, 잘 알기는 하지만 그분은 돌아가신지 오래 되셨습니다."

"저희도 잘 압니다. 교과서에 실린 권 선생님 글에 대한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혹시 권 선생님과 관계되는 유족이 계신가 하구요. 목사님이 쓰신 글을 보니까 남동생이 있는 것 같은데요... ."

"아, 남동생이 아니고 제부입니다. 그러니까 권오순 선생 여동생의 남편 되는 분이죠. K 중학교 교장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 한 번 뵌 적이 있는데, 그분은 권 선생님보다 먼저 작고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분의 부인이자 권 선생의 여동생 되는 분도 돌아가셨다고 들었구요."

"혹시 그 교장 선생님의 자녀분들은 안 계신가요? 있다면 그분들에게라도 저작권료를 지불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 액수가 상당하거든요."

"여동생에게 자녀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본 적도, 있다는 말조차 들은 적이 없으니까요."

5년 전쯤 전인 것 같다. 그때도 이와 비슷한 전화를 한국저작권위원회로부터 받은 적이 있었다. 한 여성 직원의 전화였는데, 연고자를 알지 못한다고 간략하게 답하니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권오순 선생의 동시 '구슬비'는 거기에 곡을 붙여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다.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듣고 있는 자체로 마음에 평온이 찾아드는 노래이다. 만주 용정에서 발행되던 <가톨릭소년>지에 실린 1937년 발표작이니까 80년이 넘는 나이를 갖고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P의 전화가 권오순 선생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나에게는 아름다운 장면의 추억들이다.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 두 가지를 다짐했다. 법을 지키면서 살자. 의식하지 못하고 짓는 죄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죄일지라도 알고는 짓지 말자. 또 맑은 동시를 쓰는 마음으로 살자. 구슬비의 권오순 선생처럼... .

‘자라 보고 놀란 솥뚜껑’은 성립되지 않는 말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에서 가져온 것이다. 모르고 지은 행위 때문에 대가를 치른 경험이 그 기관에서 온 전화에 화들짝 놀라게 했다. ‘저작권위원회’란 말에 지레 겁을 먹었으니…. 이 속담의 예화가 되고도 남지 않겠는가.

이명재 목사(본 신문 발행인, Ph. D)

* 첨언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혹시 권오순 선생님과 먼 관계나마 인척 되시는 분이 이 글을 본다면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연락해서 권 선생님 저작권 보상을 말끔하게 해결하면 좋겠습니다.

이명재 lmj2284@hanmail.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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