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이상욱 박사의 인문학 산책(26) -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 기독교와 서양문명을 읽는 핵심코드

기사승인 2019.06.19  22:07:53

공유
default_news_ad1

- 이상욱 교수(성산효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철학박사)

신학계의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고백록』, 톨스토이의 『참회록』, 루소의 『고백록』. 우리는 이 세 권의 고전을 '세계 3대 고백록'이라고 부른다. 각 저자의 삶과 사상(신앙)에 대한 진솔한 고백, 아름다운 언어로 뽑아내는 필치, 높은 정신세계를 향한 숭고한 갈망 등은 그 어느 자서전보다 웅숭깊고 아름답다. 지금도 세계의 수많은 독자는 세 편의 고백록을 읽으며 농밀한 감동을 선사 받고 있다.

'고백'이라는 테마는 인류 문학사에서 하나의 카테고리를 가질 정도로 묵직하다. 문학사가 운문에서 산문으로 확장되어가는 역사라는 점을 주지할 때 '고백'은 그 중간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풍자에서 고백으로, 고백에서 로망스로, 로망스에서 소설로 지평을 넓혀온 게 산문 문학의 역사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라는 불멸의 거작으로 근대소설의 형식을 완성할 때까지 '고백'은 산문 장르의 주요한 형태로서 중세 초반을 달구었다.

세상을 뜨기 4년 전,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의 초기 저술의 오류를 바로잡으려고 스스로 정리한 『재고록(Retractiones)』에 그의 저술이 총 232권이고 97개의 책으로 묶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이외에도 그는 숱한 신학적 사색이 담긴 220편의 편지를 남겼다. 학자들은 이 방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을 시기에 따라서 크게 세 단계로 분류한다. 첫 번째 시기에는 마니교를 논박하며 주로 인식론과 신론을 정리했고, 두 번째 시기에는 도나투스 분파 문제에 골몰하여 교회론과 성례전을 정리했으며, 세 번째 시기에는 펠라기우스 주의자들과 싸우며 은총론과 예정론을 확립했다.

그 저술들의 탁월한 질에 대해서는 러셀, 비트겐슈타인과 더불어 특히 영어권에서 ‘현대 철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알프레드 노드 화이트헤드(1861~1947) 말처럼 서양철학이 플라톤 철학의 각주이듯이, 시카고 대학의 대니얼 윌리엄(Daniel Williams)은 서구의 기독교 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각주라고 말했다. ‘신학계의 플라톤’이라고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들은 그 후 안셀무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하여 거의 신학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나아가 루터, 칼빈과 같은 종교 개혁자들도 바울을 따라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하다는 ‘은혜의 교리’를 이어받았다.

그뿐만 아이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속고 있다면 나는 존재한다’라는 근대적인 표현이다. 이처럼 철학에서도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와 같은 대륙 합리론자들은 물론이고 칸트, 볼프, 헤겔을 포함한 독일 관념론자들도 인간 정신의 내부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어’ 여기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과 ‘상기의 힘’이 있어 역사를 창조할 뿐 아니라 의식할 수 있다는 것 등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베르그송 역시 『지속적으로서의 시간』이라는 자신의 시간관을 정립할 수 있었고, 발터 베야민의 『지금시간』, 조르조 아감벤의 『메시아적 시간』 등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과 무관하지 않다. 문학 분야에서도 아방가르드 문학을 대표하는 프루스트, 울프, 조이스와 같은 작가들이 시도한 ‘의식의 흐름’ 곧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비로소 드러나는 삶의 의미를 조명하는 문학적 기법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상기의 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우리가 아우구스티누스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적으로 말해 기독교와 서양문명을 이해하는 핵심 코드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다.

『고백록』 - 고백인가 증언인가?

모두 13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고백록』은 9권까지는 과거에 대한 기억과 회상으로서 인간의 죄와 그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관용에 관한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10권은 두 번째 부분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영적 현재 상태를 묘사해 주고 있다. 그가 고백록을 기록할 당시 주교로서 양심에 대한 문제를 술회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11∼13권은 하나님의 창조 계획과 목적으로 비추어 볼 때, 인생의 궁극적 의미에 관해 미래지향적으로 기록, 실제적으로 창세기 서론에 관한 명상을 담아내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간증서라면 누가 보아도 9장이나 10장에서 끝나도 충분한 내용이다. 그런데 그는 거기에서 마무리 짓지 않고 내용상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창조주에서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무려 3장(11~13장)이나 할애해 추가로 설명한다. 어떤 의도가 담겨 있을까?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삶이 증명하듯이 창조에서 종말에 이르는 우주의 역사 또한 우연이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계획에 의해 보존되며 인도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지극한 은총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예술품 같은 자연으로부터 예술가적인 창조주를 발견하고 감탄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책을 397년 그의 나이 43세에 썼다. 나이로 보나 인생 여정으로 보나 그가 아직 자서전을 쓸 시기는 아니었다. 나이로 보면 그는 이후로 33년이나 더 살았고 인생 여정으로 보면 397년은 그가 히포의 감독이 된 다음 해로 막중한 임무를 새로 맡아 의욕적으로 일에 매진할 때였다. 그런데 그는 왜 하필이면 이 시기에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자서전을 썼을까? 그의 자서전은 여느 자서전과는 달리 회고록이 아니다.

『고백록』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 생애 안에 나타난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에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 이교도인 아버지와 신실한 그리스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해서 어린 시절의 영락한 교육환경, 문학에 몰두했던 젊은 시절의 방황, 마니교에 현혹된 일, 키케로를 통해 철학에 입문한 것, 회의주의 철학에 빠진 것, 신플라톤주의와의 만남과 회심, 뜻하지 않던 사제직 종사…, 이 모든 것이 하나같이 그가 위대한 기독교 신학자이자 성인이 되는 데 필연적인 준비과정이었던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아우구스티누스는 먼저 자기가 얼마나 불경건했고 이교도적이었는지를 차례로 고백함으로써 자신의 현재가 어떤 과거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준비됐는가를 독자들에게 낱낱이 고백한다. 이것은 고대 전기나 자서전들에서 주인공이 애초부터 훌륭했다는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가령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5살 때부터 천재였고, 성 암브로시우스는 어릴 적 놀이를 할 때도 주교 역할만 맡았다고 묘사하는 것과는 대조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처럼 열악하고 혹독한 교육 탓에 오직 라틴어로 쓰인 고전문학 작품들만을 읽었다. 그리고 그것을 송두리째 외웠기 때문에 오히려 완벽한 구어체 라틴어 문장 사용법과 탁월한 표현력을 기를 수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같은 준비가 본인의 뜻이나 의지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으로 이뤄졌다고 인식하고 썼다는 것이다. 『고백록』은 과거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이 자신의 현재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준비하심이었다고 고백하는 어떤 그리스도인의 생생한 증언이다.

『고백록』을 읽어보면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의 삶을 ‘신적 경륜’으로 인식했다. 그는 매 순간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 누구도, 심지어 그의 어머니 모니카마저 그를 말리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깨닫는다. 혹자는 그것을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고 주관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당사자만 알 뿐이다.

우리가 『고백록』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자기 삶의 신적 근거를 깨달았을 때 다시 말해 자기 삶의 바탕에 언제나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자율적으로만 인식되던 자신의 모든 과거가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 곧 ‘신적인 경륜’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고백록』은 “주여 당신은 위대하십니다”로 시작하여 “모두가 당신에게 구할 일이요. 당신 안에서 찾아야 할 일이며, 당신만을 두들겨야 할 일이오니, 이렇게 하는 데서만 받을 것이고 찾을 것이고 열릴 것입니다”로 끝나는 형식을 취한다. 이는 어떤 성공한 사람이 과거를 돌아보며 자랑스레 쓴 자서전이라기보다는 어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눈물로 기나긴 신앙 간증이 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고백록』은 자기의 삶에 부단히 관여하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을 깨달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앙 간증이자 자신이 맡은 교구의 교인들을 교육하려는 히포 주교의 신학 교육서이다. 『고백록』이 보여주는 이 같은 저술 형식, 곧 자신의 경험을 매개로 진리를 증언하는 서술 형식이 가진 장점은 설득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백록』은 이후 단테와 밀턴과 같은 거장들로 이어지며 서구 종교문학의 한 전통이 되기도 했다.

인문학을 토대로 신학을 세우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어떤 존재인가? 기독교는 이를 삼위일체로 설명하는데 삼위일체 이론을 세우는데 그리스 철학이 지대한 공헌을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근본은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 철학에서도 말하는 존재론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 철학의 존재론은 크게 3단계로 발전한다.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을 언급하고 이를 받아서 플라톤은 불변성을 이데아라는 개념을 통해서 설명한다. 이어서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노스의 일자(一子) 이론으로 존재론을 설명하는데 이들 공통점은 공간적이며 정적이고 불변성이다. 이는 동적인 것을 탈 시간 화로 개념적으로 파악했다.

반면에 히브리 신앙에서 하나님의 존재론의 특징은 시간적이고, 동적이며 역동성이다. 이를 잘 설명하는 단어가 ‘하야’(HAYA)이다. 있게 되다(생기다). 있게 하다(생성하다), 즉 창조하시고, 인도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다. 이러한 사상은 헬라적 존재론과 충돌하게 되는데, 이 개념은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라 시간화와 탈시간화의 마술로 접점(이용규, 『신』)을 찾을 수 있다. 이는 불변과 변화, 존재와 생성이 대립하는 거나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정직하다고 개념화할 때, 이는 그가 계속해서 정직한 삶이 삶을 살고 있다는 정적이고, 공간적이며 역동적이고, 동적이고, 정적인 개념이다. 이는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종합되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스 철학의 존재론이 삼위일체 신학에 영향을 미쳤다.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노스는 세상의 생성을 설명할 때, 일자(토 헨), 정신(누스), 영혼(프시케)은 신적인 존재인데 이것들을 하나이지만 세 개로 서로 교류하고 있다. 신플라톤주의 형이상학이 삼위일체 교리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는 성경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만이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이성만으로는 진리에 대한 인식의 길로 이끌 수 없다. “신앙은 신의 탐구에 앞선다” “신앙은 신을 추구하고, 지성은 신을 발견한다”와 같이 그리스도교와 신플라톤주의를 결합하여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찾았다. “만일 우리가 믿지 못하면, 우리는 이해하지 못할 것.(Credo ut intelligam)”, 이성과 신앙의 중용을 말하고 있다.

소년 시절 아우구스티누스는 다른 무엇보다도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신 『아이네이스』에 몰입했다. 그의 만년 대작인 『신국론』에서도 이 시에 대한 언급할 만큼 『아이네이스』와의 만남은 그에게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다.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을 비롯한 라틴 고전문학은 마치 술통에 채워진 첫 포도주처럼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오랜 세월 변하지 않는 향기를 남겼다. 복잡하고도 미묘한 인간의 감정을 간결하고 무게 있게 표현한 문장들을 철저하게 외우는 교육을 받은 이 소년은 나중에 청중에게 눈물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구어체 언어의 대가가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지금은 유실되어 전해지지 않는 키케로의 저작인 『호르텐시우스』를 읽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처음으로 인문학(Humanitas)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인물이다. 키케로는 로마의 정치가이자 웅변가이며 절충주의의 철학자였다. 그는 아들에게 쓴 책 『의무론』에 데크룸을 주장한다. 욕망은 이성에 복종시키고, 수행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살펴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알맞게 배려하고 자유인답게 사람다운 위엄과 중용의 도를 지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웅변술을 탐구하려는 목적으로 그 책을 보았지만, 거기에 담긴 키케로의 사상에 곧바로 매료되어 벅찬 감동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문장탐구’가 아니라 ‘지혜탐구’라는 새로운 계획과 꿈을 갖게 되었다.

『고백록』에 당시 일어난 그의 심경 변화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을 읽은 후 그때까지 품어 왔던 나의 모든 헛된 희망이 돌연 하찮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나의 마음은 이제 불멸의 지혜를 추구하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당신에게 돌아가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를 돌아보면 이때 그의 관심이 감성적인 문학에서 지성적인 철학으로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그는 키케로를 통해 그가 학문에 대한 실용적이고 절충적인 관점과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같은 심경의 변화와 절충주의적인 학문의 기술을 획득한 한 것은 훗날 그의 신학 세계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의미에서 그는 철학과 종교, 이성과 신앙, 아테네와 예루살렘, 요컨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성공적으로 절충하고 통합한 사람이었다.

데이터 종교에 빠진 인간

3836년 여름, 29세 성인(成人)이 된 아우구스티누스는 더 큰 세속의 야망을 품었다. 수업 태도가 나쁜 카르타고의 학생들과 눈물로 말리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제국의 수도인 로마로 향했다. 로마에 도착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여전히 마니교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이번에는 회의주의(skepticism) 경향을 띤 ‘신 아카데미 학파’라는 철학 집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들은 사람은 자신의 감각에 기초하여 판단하므로 인간의 지식은 상대적이고 불확실하며 보편성과 절대성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진리도 얻을 수 없으므로 진리라고 믿고 있는 모든 거에 대해 의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이성의 힘’으로는 새로운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요컨대 고대의 회의주의는 플라톤의 『국가』에서 설계한 것처럼 인간의 이성으로 이상세계(utopia)를 세워 보려던 영웅적인 그리스 정신이 이미 몰락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 개인뿐만 아니라 시대적으로 자신들이 지닌 이성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초이성적인 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아우구스티누스는 나중에야 자신의 이 같은 통찰을 ‘신앙이 지식의 출발이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때부터 그는 쇳덩어리처럼 굳건했던 자신의 이성을 신앙 앞에 서서히 무릎 꿇릴 수 있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포스트 모더니스트로 불리는 푸고, 라캉, 데리다 리오타르, 로티와 같은 철학자들도 이성에 의한 지상천국을 설계하려 했던 근대성(modernity)의 폭력에 치를 떨며, 지식과 도덕의 보편성이나 확실성을 부인하고 상대성과 개연성만을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회의주의라 할 수 있는 21세기의 포스트모더니즘이 고대 회의주의가 아우구스티누스와 그 시대처럼 다시 ‘신앙의 시대’를 끌어낼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만 않다. 유감스럽게 오늘 인류는 오히려 그 반대쪽 벼랑을 향해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극단의 징후를 히브리 대학교의 유발 하라리 교수가 근래에 출간한 『호모 데우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호모 데우스’는 사람을 뜻하는 학명 호모(Homo)와 신을 뜻하는 데우스(Deus)의 합성어이다. 우리말로는 ‘신이 된 인간’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신이 되어 간다는 것이 하라리의 생각이다. 근대 이후 인간의 이성이 신을 가차 없이 몰아내고 인본주의가 신본주의를 매몰차게 밀쳐 낸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이제 설사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불멸’, ‘행복’, ‘신성’을 추구하는 호모 데우스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 이성의 산물인 과학과 욕망의 산물인 자본주의 경제 때문이다.

하라리에 의하면 ‘인간을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유전자를 조작하여 죽음을 초월한 존재를 만드는 생명공학,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인조인간을 만드는 사이보그 공학,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여 초지성을 만드는 비유기체 합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첨단과학은 모두 자본주의의 경제의 생존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자본주의의 경제가 자체 생존을 위해 ‘불멸’, ‘행복’, ‘신성’이라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겨 그것을 가능케 하는 첨단 과학기술 개발을 한없이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좋건 싫건 초인간이 되는 날이 코앞에 다가왔다. 그 혜택은 극히 소수의 엘리트만이 누릴 것이고 나머지 대부분 사람은 밥만 축낼 뿐, ‘쓸모없는 계급’으로 전락하리라 추측한다. 우리는 지금 파국을 향해 무한 진주하는 설국열차에 올라탄 것이고 이 열차에는 브레이크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류의 역사가 끝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하라리는 머지않아 사람들이 자신의 진로나 결혼 상대의 선택, 또는 투자나 전쟁을 할지 말지까지도 자기 자신이나 신에게 묻지 않고 구글과 페이스북에 물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컴퓨터 알고리즘과 빅데이터가 새로운 우상으로 등극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차츰 그것들의 노예

이상욱 박사(성산효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Ph. D)

로 전락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18세기에 인본주의는 하나님 중심적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 하나님을 밀어냈다. 21세기에 데이터 교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데이터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 인간을 밀어낼 것이다”

이상욱 daum.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