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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욱 박사의 인문학 산책(25)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그리스 로마시대 군주의 거울

기사승인 2019.06.12  18: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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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욱 박사(성산효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Ph. D)

플루타르코스, 그는 누구인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반대로 이 책을 제대로 읽은 이도 드물 것이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책이다. 이유는 감히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 때문이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은 영웅전 전체를 정독하기보다는 부분부분을 읽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1세기를 전후해 살았던, 그리스에서 태어나 로마인이 된 철학자 플루타르코스가 쓴 책이다. 원래 제목은 『대비열전(對比列傳)』이다. 『대비열전』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유는 책의 구성 때문이다. 플루타르코스는 두 사람의 영웅, 장군, 왕, 정치개혁가, 수사학자 등 서로 그리스와 로마에서 각각 비슷한 업무를 수행했거나 성격이 비슷한 사람, 혹은 역사적 업적이 유사한 인물을 대비시켜 서술했다. 이렇게 46명이 등장하고, 별도로 4명이 등장하기 때문에 총 50명의 영웅이 주인공이다.

플루타르코스는 서양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몽테뉴, 셰익스피어, 드라이든, 루소, 에머슨 등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면 셰익스피어가 비극적 영웅이라는 개념을 만드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는데, 셰익스피어의 3편의 로마극 『코리올라누스』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플루타르코스의 영향이 없었더라면 쓰일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이 후대에 이렇게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스 시대에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성찰하는 삶’ 즉 인간본질에 대한 성찰이었다면 로마 시대의 영웅들이 갖춰야 할 주된 덕목이 ‘행동하는 삶’ 즉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상 세계의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그리스와 로마 영웅들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되 역사가 시각에서 정치적인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영웅들의 내면세계와 성격 형성에 초점을 맞추고 인물의 특징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개개 영웅들의 태어난 환경과 성장 과정, 성격, 기질, 행동, 미덕, 업적 등을 잘 드러내 주는 일화 등에 많은 관심과 열정을 기울였다.

그리스에서 군주들에게 거울이 되는 책은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플라톤의 『국가』, 그리고 크세노폰의 『키로파에디아』라면 로마 시대에 군주들에게 거울이 되는 대표적인 책은 플루타르코스의 『대비열전(對比列傳)』이라 할 수 있다.

플루타르코스는 B.C 46년경에 태어나서 트라야누스 황제 시절(A.D. 98-117)에 『대비열전(對比列傳)』을 저술했다. 그는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출신은 그리스였고, 그가 활동했던 역사의 무대도 그리스였다. 그는 스무 살쯤 고향을 떠나 당대 최고의 학문적 명성을 떨치던 아테네의 아카데메이아에서 수학했다. 당시 로마인들은 그리스를 문명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었고, 황제들부터 그리스풍을 따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던 시기였다. 그는 자신과 교류했던 집정관을 지냈던 미니키우스와 트라야누스 황제 시절 2번이나 집정관을 지낸 소시우스에게 이 책을 헌정했다.

플루타르코스는 로마 사회의 공직에 나설 젊은이들을 위해 이 책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제국의 최고 전성기에 진정한 ‘영웅’의 모습을 제시한다는 것은, 현시대의 잠재된 위기를 간파하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준비하겠다는 자신의 결의를 반영했다고 하겠다. 현재와 미래의 로마 지도자들에게 위기의 시대에 본받아야 할 지도자의 거울을 보여준 것이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로마시대 군주의 거울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이 책은 그리스 편과 로마 편으로 나뉘어 있다. 각각 5명씩 10명의 핵심 인물만 들어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다이제스트란 말은 아니다. 왜 10명만 소개했나? 이에 대해서는 옮긴 이 천병희 교수의 안타까운 소회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50명 전부를 다루고 싶지만, 원전 번역해야 할 책들이 많이 쌓여있고, 또한 꼭 자신이 아니라도 누군가 번역해낼 수 있으리라, 예상되는 성격의 책들은 번역 순서에서 뒤로 미뤘다, 그러나 주요인물이라도 읽혀야 한다는 점에 펴내지 않을 수 없었노라고. 그런데도 단 10명을 선정해서 번역했을지라도 비교 열전이라는 특징을 살리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이 책은 가장 먼저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를 다룬다. 테세우스가 그리스의 건국자라면, 리쿠르고스는 그리스의 기틀을 잡은 인물들이라 할 수 있겠다. “스파르타식 교육”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이 그리스를 침공했을 때,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용감히 싸우다 전사한 레오니다스의 용사 ‘300’의 전전설 같은 이야기도 바로 이 스파르타식 교육의 결과이다. 스파르타의 전설적인 입법자 리쿠르고스(B.C. 900-800)가 바로 이 스파르타식 교육을 도입해 자신의 조국을 그리스 최강의 도시 국가로 만든 지도자이다.

그는 왕족 출신으로, 왕위에 오를 수 있었지만, 자신의 왕위를 포기하고 적통인 어린 조카에게 왕위를 선위하고 자신은 대리인으로 정사에 매진했다. 이런 모습은 주공이 사심 없이 왕의 후견인으로 주나라의 장비를 정비하는 중국 주나라의 주공의 모습과도 흡사하다. 이런 리쿠르고스의 법령은 500년 가까이 지켜졌고 그 결과 스파르타는 그리스 전역에서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소개하는 인물은 그리스의 7현자로 유명한 아테네의 솔론이다. ‘솔론의 개혁’이라는 유명한 표현이 있다. B.C. 593-591년까지 ‘아테네의 현자’로 물린 솔론이 추진했던 아테네의 정치 개혁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아테네를 건강하고 평등한 사회로 만들고, 이른바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 체제’로 정착시키기 위해 사회 구조 자체를 개혁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서구 사회는 그를 민주주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래서 민주주의 제도가 가장 이상적으로 발현했다는 미국 의회 건물 벽면에 솔론의 조각상이 전시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테네의 정치가 솔론은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의 앞부분에 잠시 등장한다. 그는 누가 가장 행복한가? 그는 전쟁에 나가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텔로스와 헤라 여신의 제자였고,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 마차를 끌고 먼 길을 달려온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운명이란 우연의 결과이며 아무리 부와 권력을 가진 자라고 해도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은 허망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현명한 사람’ 위에 ‘행복한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솔로의 개혁’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아테네 시민들은 모두 솔론의 새로운 법을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이를 위해 솔론은 10년간이나 외유를 떠나면서까지 자신의 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은 그의 개혁은 실패로 끝이 나고 만다. 그리고 플루타르코스의 진짜 영웅은 로마의 푸블리콜라이다. 그리스 솔론의 씨앗이 로마의 푸블리콜라로 꽃을 피운다.

세 번째로 소개하는 영웅 테미스토 클래스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저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을 통해 막강한 페르시아 군대를 몰살시켜 그리스 본토를 구원했던 영웅이었다. 이상 국가 건설을 위해 어떻게 지도자를 양성할 것인지 고민했던 플라톤의 『국가』 제8권에서 테미스토 클래스를 분석할 만한 해석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테미스토 클레스는 페르시아 전쟁이 끝나고 기원전 459년에 임종했지만, 다음 세대를 산 플라톤에게도 여전히 전설적인 존재였다. 우리에게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이 있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 페르시아를 물리친 테미스토 클레스가 있다. 이순신에게 명량해전이 있다면 테미스토 클래스에는 살라미스 해전이 있고, 두 사람은 모두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네 번째로 소개하는 영웅은 페리클레스이다. 그는 그리스를 안정시킨 정치인이다. 위기가 닥치면 영웅이 탄생하기 마련이다. 난세가 영웅을 만드는 것이다. 고대 로마의 최대 위기는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를 짓밟았던 포에니 전쟁일 것이다. 그리스 최고의 위기는 아마 페르시아 전쟁의 상처가 체 아물기도 전에 터진 동족상잔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었다. 두 전쟁이 시대의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는 위기를 초래했다. 아테네와 로마가 누란의 위기에 취해 있을 때 등장인물이 바로 페리클레스와 파비우스 막시무스이다.

페리클레스는 이런 위기의 시대에 아테네를 ‘탁월함’으로 이끈 지도자였다. 플루타르코스는 아예 작심한 듯이 첫 번째 절부터 페리클레스의 탁월함을 적극적으로 칭찬하며 “탁월함으로 충만한 업적은 곧장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그 탁월한 업적을 우러러보는 동시에 그 일을 달성한 사람을 본받고 싶게” 만든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스의 페리클레스는 부유한 아테네를 더더욱 강하게 만들었으며,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통해 아테네의 제국주의를 그리스 만천하에 알렸던 인물이다. 역사가들은 페리클레스가 아테네를 통치했던 기원전 5세기를 ‘페리클레스의 황금기’라고 평가한다. 널리 알려진 그의 업적은 파르테논 신전(B.C. 447-438)을 비롯해 공공사업을 진행하였다.

다섯 번째로 소개하는 영웅은 알렉산드로스이다. 알렉산드로스는 로마의 카이사르와 함께 그리스를 대표하는 영웅이다. 시대의 패권을 상징하는 영웅이다.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는 즉위 직후 혼란스러운 국내를 정비하고 혼란한 틈을 타 반란을 일으킨 그리스 연합군을 정벌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연합군에게 본보기로 테베를 박살 냈으며, 이로 인해 마케도니아가 여전히 그리스의 맹주라는 것을 과시했다.

그 뒤 그는 시대적인 과업인 동방 원정을 감행하여 페르시아를 정벌했으며, 이집트와 인도까지 진출했다. 원정을 통해 헬레니즘 문화를 다른 지역으로 퍼트리는 데 일조했다. 병사들의 반발로 인해 원정은 인더스강에서 중단됐으며, 그 뒤 그는 바빌론으로 귀환하였고, 음주를 탐닉하다 죽음을 맞이했다.

여섯 번째로 소개하는 영웅은 마르쿠스 카토다. 로마의 마르쿠스에 비교할 수 있는 그리스의 영웅은 아리스테이데스이다. 일곱 번째 소개하는 영웅은 로마의 그라쿠스 형제는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펼친 대표적인 인물이다. 형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고 동생은 가이우스 그라쿠스다. 여덟 번째 소개하는 영웅은 가이우스 그라쿠스이다. 가이우스 그라쿠스는 형의 죽음 이후 몸을 사렸지만, 사르나디아 전투에 복무하였고, 로마에 복귀하면서 호민 관직을 시작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아홉 번째로 소개하는 영웅은 카이사르이다. 알렉산드로스가 그리스를 대표하는 영웅이라면 카이사르는 로마를 대표하는 영웅이라 할 수 있다. 카이사르는 로마의 공화정을 무너트렸고 나라의 권력을 자신의 손 아래에 뒀다. 그는 특유의 처세를 바탕으로 민중들을 선동했고, 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넓혀갔다. 그 뒤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의 지원을 받아 갈리아 원정을 떠났고, 그곳에서 힘겨운 싸움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갈리아와 게르마니아의 정벌과 반란을 진압하고 유럽을 로마의 패권 아래에 복속시킨 그는 크라수스가 죽자 폼페이우스와 자웅을 겨루기 위해 군대를 일으켜 루비콘강을 건넜고, 폼페이우스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 뒤 폼페이우스를 추격하여 이집트를 정벌했으며, 거기서 폼페이우스의 목을 얻는다. 이후 폼페이우스의 잔당 세력을 소탕하러 아프리카와 이베리아 출진했으며 귀환 후 로마의 권력을 일원화하였다. 권력을 강화한 카이사르는 브루투스 일파가 계획한 암살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열 번째로 소개하는 영웅은 마케도니아의 데메트리오스와 비교하는 로마의 안토니우스다. 이 둘 역시 매우 비슷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인물은 모두 능력이 탁월하고, 매우 뛰어난 군사적 업적을 남겼지만 엄청난 결점이 있었는데 자신의 삶에 있어서 방종하고 사치하며, 쾌락을 탐닉하는 모습이 서로 매우 닮았다. 이들의 최후는 비참한 모습이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로마의 안토니우스는 능력은 탁월했지만, 허세와 자부심이 가득했고 전형적인 기회주의적인 인물로, 카이사르를 지지했던 인물이다. 그는 늘 헛된 야망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과소비와 여자 문제, 그리고 과음을 하였다. 카이사르는 갈리아와 게르마니아에서 힘들게 전쟁을 하며 정치적 자금을 로마에 풀었고, 안토니우스는 그러한 돈을 이용하여 온갖 사치를 누렸다.

그는 카이사르의 거병을 직접 권유했으며, 그 뒤 폼페이우스와의 전쟁에서 그는 커다란 전공을 세운다. 카이사르 사후 그는 브루투스 일당을 지지하는 척하면서 목숨을 구했지만 결국 포룸에서 카이사르의 유언을 공개하며 시민들의 감정을 자극했고, 이로 인해 브루투스 일당은 국외로 피신하였다. 그 뒤 2차 삼두정치를 선포하고 브루투스 일당을 제거했으며, 그리스와 아시아 등등으로 가서 사치와 향락을 즐겼다.

파르테논 신전(사진 = 천재수학)

클레오파트라를 만난 안토니우스는 그에게 빠져들었고, 결국 이는 그의 최후를 단축하는 주요한 원인이었다. 그는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져 파르티아 전쟁을 올바르게 수행하지 못했고, 옥타비아누스의 누이이자 자신의 본처인 옥타비아를 홀대했으며, 이로 인해 결국 옥타비아누스와 전쟁을 치르게 됐다. 당시 옥타비아누스보다 안토니우스의 세력이 훨씬 많았고, 지상 병력은 안토니우스의 군단이 훨씬 강력했다.

그런데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의 말만 듣고 우세한 육상전을 벌이고 굳이 바다에서 해전을 고집했다. 그 결과 악티움에서 해전이 벌어졌고, 안토니우스는 열심히 싸우는 부하들을 버리고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도망쳤다. 안토니우스의 군대는 그가 도망쳤는지 몰랐으며, 그로 인해 열 시간가량 치열한 접전이 이뤄졌다고 한다. 도주 뒤 그는 스스로 자결했으며, 자결하면서까지 클레오파트라에게 애정을 고백했다고 한다.

로마 시대의 거울 – 플루타르코스 『대비열전(對比列傳)』

한국사회에 인문학에 대한 광풍이 불고 있다. 기업마다 인문학 강연이 붐을 이루고 있다. 한국 대학이 현실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문학은 대학의 학문이 아니다. 오히려 대학 밖의 학문이다. 이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중세 유럽 말기의 신흥 상공인 계급이 자녀들에게 ‘인간에 대한 학문’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인문학자들을 가정에 상주시키면서 만들어 낸 학문이다. 현실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사변적인 논쟁만으로 일삼던 중세 대학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학문이다.

좀 더 좁혀 말하자면 인문학, 즉 ‘인간에 대한 학문’은 대학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경영현장에서 생겨난 것이다. 현실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사변적으로 논쟁만 일삼던 중세 대학에서 가르치던 ‘신에 대한 학문’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했다. 그렇다면 1401년부터 페트르카에 의해서 시작된 인간의 학문은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을 본다. 샤워하고, 세수하고, 머리를 감고, 면도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 반드시 거울을 본다. 왠지 낯선 모습이 거울 화면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다. 종종 생각한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나의 모습인가? 다른 사람들도 저 모습을 보고 나라고 생각할까? 거울에 비친 모습이 예전 같지 않을 때도 있지만 거울 앞에서 종종 만족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이 거울을 보는 것은 흐트러진 모습을 바로잡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나를 바로 점검하는 목적이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신체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은 거울을 보면서 확인하여 흐트러진 모습은 바로잡고, 새로운 모습을 창조해 가지만 내면적인 모습, 사유세계, 사고방식, 마음가짐, 영혼의 성찰 거울은 무엇인가? 그리스 시대의 군주들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우스』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의 전쟁사』, 크세노폰의 『키로파에디아』, 플라톤의 『국가』와 같은 고전들이 그들의 고전이었다. 로마시대에 군주들 우리가 읽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이 이들의 거울이었다.

그리스보다 로마의 역사가 훨씬 긴데 왜 로마에서는 한권만 말하는가? 사실 책의 분량으로만 따지자면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은 그리스 편에 소개한 책보다 4배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이다. 이들은 이런 고전을 통해서 무엇을 응시했을까?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거울이었다면 로마 사람들은 세상은 무엇인가? 즉 현상계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거울이었다. 21세기의 문명을 바꾼 스티브 잡스는 거울을 보는 남자였다. 매일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성찰했던 스티브 잡스는 세상을 바꾸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아니 좀더 나은 내 삶을 바꾸고 싶은가? 그러면 우리도 매일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과 같은 거울 앞에 서야 한다.

이상욱 박사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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