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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사회적 자아(自我) 찾기 - 영화 '생일'을 보고

기사승인 2019.05.02  12: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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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영화의 제목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단어 '생일'이라면. 포스터를 자세히 살펴보니 '네가 없는 너의 (생일)'란 수식 어구가 붙어 있었다. 없는 자의 생일이라면 멀리 떠나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그렇다. 영화 '생일'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못 다핀 한 학생의 짧은 삶을 그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하루아침에 불귀의 몸이 된 고등학교 2학년 친구, 수호의 생일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세월호 5주기에 맞춰서... .

이건 특별히 구별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더 친근감이 간다. 세월호 침몰이라는 전무후무한 사건 속에 소롯이 녹아 있는 아픔을 그리고 있어서 더 아리다. 우리 모두의 아픔으로 전이되어 온다.

영화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일'도 미해결된 세월호 사건의 진상 규명을 강력하게 주장하거나 책임자 처벌에 대한 목소리는 거의 없다. 단지 희생자 유족들의 아픈 마음을 드러냄으로 사회의 각성을 간접적으로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 '생일'은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따라서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진행되어 간다. 설경구 전도연을 비롯한 각 배우들의 역할도, 플롯을 위한 배경도 심지어 신(scene)과 배치된 소품들도 대중들과 친밀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지금은 하늘나라 사람인 수호의 공부방, 오빠와의 예쁜 추억만 간직하고 싶은 예솔(김보민)의 학용품과 장난감들, 아빠가 부재하는 동안 가정을 꾸려가는 순남의 일터인 마트도 일반 서민들의 눈에 친근한 장소다. 우리와 쉽게 등치되는 이유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진리와 정의를 향한 단결된 힘이 없었다면 세월호 사건은 어떤 식으로든 봉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유족들은 내 아이가 왜 죽었으며 국가는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끊임없이 묻고 있다. 시민의 힘을 모범적으로 보여주었다.

수호 엄마인 순남(전도연)은 그런 자리에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 사랑하는 아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데 모여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게 무에 그렇게 중하냐는 생각이었다. 혼자 매일 생각 속에 아들을 담고 있으면서... .

죽은 수호의 생일을 두고도 순남은 마음을 열지 않는다. 생일은 살아 있는 사람을 축하하는 날이다. 이미 나의 아들은 죽지 않았는가? 그래서 작년에 수호 생일을 챙기려는 주위 사람들의 움직임을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런 순남의 마음에 변화의 조짐이 일어난다. 남편 정일(설경구)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한다. "그 날, 수호도 돌아오지 않을까?" 남은 어린 딸 예솔(김보민)이 순남의 아픈 구석을 때린다. "엄마는 왜 오빠 생일하기 싫어?" 엄마는 자녀의 호소에 약하다.

순남의 변화가 시작된다. 이것은 그의 사고 폭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입장의 유가족들 권유에 마지못해 따르는 순남. 죽은 수호의 생일 파티에 참석해서 새로운 사실을 전해 듣게 된다. 세상 삶에 바빠 미처 몰랐던 아들에 대한 이야기!

수호가 입을 구명조끼를 여학생 친구에게 입혀주고 갇혀 있는 다른 친구들을 구조하러 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수호는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수호의 생일 날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과거의 사건이 영화의 소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좋든 싫든 그 사건에 대한 요구가 영화에 녹아 있게 마련이다. 영화 '생일'이 세월호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면 이러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아쉬워할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생일'이 직접적이 아니라 우회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강력하다. 그리고 광범위하다. 정의로운 삶, 진실 되고 사랑이 넘치는 삶을 강조하고 있는 이 영화는 모든 요구를 담고 있다. 잠복된 것까지도. 깨달음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이런 메시지가 관객에게 주는 진동이 더 크다. 여기서 하나 강조할 게 있다. 나는 '생일'을 가족 영화의 범주에 넣으려 한다.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며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믿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하나 더 첨가할 게 있다. 이 영화는 가족이 함께 봐야 한다. 얽혀 있거나 굳어 있는 가족 관계를 푸는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함께 있을 땐 중요성을 모른다. 가족 등 주위 사람들이 얼마 소중한 존재인가를.

영화 '생일'을 보고 나면 부모에게 또 자녀에게 그리고 형제자매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눈을 자주 주게 될 것이다. 가족이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감독 이정언의 섬세한 앵글도 이것에 비중을 두고 비춰주고 있다.

영화도 예술의 한 장르이다. 예술의 기능 중 하나가 마음의 정화(catharsis)이다. 과거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이 정화 기능을 수행해 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생일'은 그 기능을 잘 해내고 있다. 등장 인물들의 자연스런 연기와 스토리 전개가 한 몫을 해 내고 있다.

이명재 목사(본 신문 발행인, Ph. D)

물신주의가 팽배해 있고 치열한 경쟁 속에 내몰린 현대인, 그래서 주위를 돌아볼 겨를이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예외 밖에 있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가족 가운데 나를 찾고, 사회로 확대해서 우리를 확인하는... .

이명재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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