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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케빈 데이비스 편저 『법정에 선 뇌』(실레북스 출판)

기사승인 2019.04.20  09: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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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돈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박사)

케빈 데이비스 편저 『법정에 선 뇌』(실레북스, 2018년 10월 출판)

범죄자의 뇌: 신경과학이냐 신경신화(神話)냐?

“현대 과학의 발전으로 우리는 형사피고인을 더 완전하게, 연민을 가지고 평가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렇게 평가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 사회를 보호하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신경과학은 형사사법제도에서 모든 이들의 이익을 도모할 기회를 제안하고 있으며 우리 앞에 펼쳐진 신경과학의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하다”(328p.) 
 
‘실험실의 뇌’도 아니고, ‘법정에 선 뇌’라니? 뇌가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말인가? 이 책이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는 부제로 달려 있는 ‘뇌손상은 살인에 대한 이유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말해준다.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등장하는 이 물음은 저자에 의하면 신경과학 분야의 최근 트렌드라고 한다. 우리나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도 관련 연구들이 불쑥 불쑥 소개되고 있다.  

예컨대, 2010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의 아드리안 레인 교수는 살인범 38명의 뇌를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한 결과 폭력성의 원인이 뇌의 생리학적 결함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2013년 뉴멕시코대학의 교수 켄트 키엘 등 연구진은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스캔한 96명의 수감자들의 뇌를 석방 후 4년간 추적관찰한 결과 뇌의 ACC(Anterior Cingulate Cortices, 전대상피질)에 활성이 떨어진 사람의 경우 다시 범죄를 저질러 재수감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함으로써 신경과학으로 반사회적 행동 내지 범죄의 예측까지 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같은 프리 크라임(pre-crime)시대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학술서처럼 신경과학의 연구성과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하지도 않는다. 미국 사법제도를 변화시킨 사건으로 손꼽히는 1991년 와인스타인 사건을 축으로 삼아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범죄자의 뇌가 문제된 다양한 사건들로 우리를 안내한다. 뿐만 아니라 범죄자의 ‘뇌’속을 들어가 본 신경과학자들의 노력이 소개되고, ‘법정’안으로 소환되어 온 범죄자의 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신경과학과 신경법학과의 공방, 더 나아가 신경과학과 신경법학의 미래에 대한 조심스런 진단까지 내놓고 있다. 

범죄가 뇌손상의 결과일 뿐 인간의 외부적 행동이 자유의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면, 현재의 형사사법시스템의 근간이 통째로 무너지게 된다. 범죄가 생물학적 뇌손상 때문이라면 자유의 남용에 기초한 ‘책임’개념과 그러한 책임비난에 근거하여 형벌을 부과하는 메커니즘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는 의사자유가 없는 인간에게 형벌을 부과하는 것을 ‘고장 난 자동차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른 것과 같다’는 말로 비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의미의 뇌결정론이 출발점으로 삼는 ‘환원주의적 사고’는 이미 19세기 범죄학파의 창시자인 체사레 롬보로소(1835-1909)의 ‘생래적 범죄인론’을 필두로 하여 각기 다른 종류의 결정론으로 나타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결정론적 사고는 우생학이 남긴 상처와 함께 과학의 무대 뒤로 물러난 듯 하였지만, 최근 뇌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필자도 한때 벤자민 리벳의 실험으로 대변되는 뇌과학적 연구결과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뇌과학에 의해 변화될 미래의 형사책임이론을 거칠게 전망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간의 행위가 자연적·사회적 사실에 조건지어지는 것임을 인정하되, 다른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다. 즉 인간의 행위는 결정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결단하는 측면도 부정할 수 없고, 특히 행위에 대한 책임개념은 자연적·객관적 사실을 그대로 모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그리고 ‘자기생산적 체계’인 (형)법체계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편이다. 

뇌결정론은 여타의 다른 결정론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조건들 중의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는 붓대롱적 시각의 반영에 불과할지 모른다. 방법론적으로 실험실의 청개구리처럼 현미경으로 뇌만 들여다보고 인간과 인간의 행위에 대한 결론을 성급히 내려서는 안된다. 손상된 뇌가 행위에 영향을 줄 수 있듯이 유전적 특질, 외부환경, 그 밖에 다른 조건들도 인간의 행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의 경험을 뇌와 행동의 관계를 자연과학 용어로 새롭게 표현하면서 그것이 구축되는 과정의 다른 외부환경적 측면과 행위자의 주관적이고 자율적인 측면을 무시해 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뇌는 우리 정신활동의 물질적 기질을 이루지만, 우리가 하는 사고의 내용물은 뇌의 일부에서, 뇌를 둘러싼 환경의 안팎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뇌를 촬영한 영상에서 볼 수 있는 것(전기적 활동이나 혈류의 변화 등)은 생각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이른바 사고라는 것을 할 때 발생하는 생물학적 상관관계일 뿐이라는 생각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뇌가 정신적 실재의 객관적 조건임을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신경과학을 신화화해서는 안된다는 경고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필자에게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신중론자들의 목소리도 들려주고 있다. “신경과학의 가치가 개인의 범죄행위에 적용하는데 있다기보다는 형사사법정책 형성에 있다”고. 이 때문에 이 책은 필자와 같이 한때 뇌결정론에 성급하게 경도되었던 법학자의 어깻죽지를 내리치는 죽비와도 같다. 그러나 법률실무가, 법학자 그리고 입법자 등 이 책을 필독서로 삼아야 할 예비독자들에게 있어 뇌과학은 적어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의 뇌는 그렇지 않은 사람의 뇌보다 훨씬 더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편집부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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