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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일기(31) - 명구. 2

기사승인 2019.04.19  21: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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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엔 근엄한 훈장님이 계셔 잡담도, 흐트러진 자세도 해선 안 되고 오로지 글만 읽고 배워야 한다. 

오늘도 조용히 글을 읽는데, 이게 무슨 자냐? 명구의 물음에 보니 나도 모르는 한자이기에 '모르실 자'라고 대답을 해 줬더니, 훈장님의 물음에 모르실 자라 대답을 해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고 그 바람에 훈장님께 명구는 종아리를 몇 대 맞았다. 

서당서 공부를 마치고 나면 가끔은 서리에 나선다. 감자밭에 가 싹은 안 다치고 감자알만 캐오는 데는 명구를 당할 사람이 없다. 모래 속에 묻고 그 위에 불을 지펴 한참을 기다려 꺼내면 노릇노릇 잘도 익어 맛이 참 좋다. 

은자 아버지가 늘 지키는 참외밭에도 명구는 발가벗고 살금살금 기어가 잘도 따온다. 

누릇누릇 밀이 익어 가면 밀 이삭을 잘라 모닥불에 구워 손으로 비벼 먹는 구수한 맛. 명구는 재주도 참 좋다. 

어느 날, 동네가 떠나가라 울부짖음에 달려가 보니 극성맞다 소문난 동기 엄마가 명구 엄마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쥐어박고 악을 쓴다. 

"요년 자식 넷이 모두가 씨가 다른 년아, 씨 다른 자식 다섯 만들려 이 짓이냐?" 동기 아버지랑 자다가 들켜 초죽음을 당하고 있다. 

그 후 내 친한 친구인 명구는 가족들과 함께 떠나버렸다. 친한 친구와 헤어짐에 가슴이 아려온다. 참 좋은 친구 명구, 언제나 만나려는지... . 명구가 없음에 모든 게 재미가 없다.

* 친구의 아주 오래된 옛날 일기입니다. 
1954년 생, 진짜 촌놈의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정윤영)

정윤영 gcilbonews@daum.net

<저작권자 ©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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