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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욱 박사의 인문학 산책(16) - 근대성과 왜곡된 근대성의 비극,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서

기사승인 2019.03.25  01: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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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욱 교수(성산효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철학박사)

이상욱 교수(성산효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철학박사)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서구의 근대성은 사회적 산물일 뿐 맹목적으로 추종할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근대화는 인간 존엄성에 뿌리를 두고 합리성과 주체성에 입각한 사고와 행동을 요구했다. 비서구 사회에서 합리성은 ‘합리성’이라는 가치나 개념을 옹호하거나 미신적 풍습과 같은 비합리적인 속성을 비판하는 이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구 사회를 따라잡으려고 경제성장 체제를 ‘합리화’하려는 논리에 불과했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마음』 은 비서구 사회에서 근대화를 부국강병 이데올로기로 활용한 일본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1000엔 지폐의 인물로 등장한다. 일본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 근 1세기에 걸쳐 그에 대한 일본인들의 존경과 지지는 흔들린 적이 없다. 일찍이 도스토옙스키가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라고 한 수사는, 니콜라이 고골이 그랬던 것처럼 나쓰메도 일본 문학계에서 사실주의 문체를 확립한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국민 작가’라는 영예를 얻은 것은 단지 그의 문학적 미학의 성취에만 한정된 말이 아니다. 많은 일본인이 나쓰메를 근대 일본의 정신적 현실을 진단하고, 나아가야 할 지표를 제시한 지식인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민족 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 국가적 신념과 같은 가치를 대변하는 존재로 떠받들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근대는 서양 문명의 이식 과정이었다. 서양으로부터 도입한 예술 제도로서의 문학 역시 어떤 의미에서든 ‘문명화’의 일각(一角)을 담당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보고 배운 서양에 대한 관찰과 이해를 바탕으로 일본의 현실을 투시했다. 이러한 현실에 비분강개(悲憤慷慨)하는 문사(文士)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문필 활동을 전개했다. 나쓰메 소세키가 자신이 도쿄제국대학 영어영문학과 교수에 지망하게 된 동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가 영국에 유학한 이유도 “영어로 훌륭한 문학 저술을 내서 서양인을 놀라게 하고 싶었다”라고 술회한 것을 볼 때, 그의 일본 현실에 대한 자의식은 분명했다. 서양을 배워 서양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교수 생활을 하면서 창작 생활에 접어든 지 7년이 지나간 시점에서, 나쓰메는 스스로가 교수직보다는 글을 쓰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에 큰 의의를 부여하였다. 그는 제자 모리타 소헤이(森田草平)에게 쓴 편지에서 “100년 후에는 100명의 박사는 흙으로 변하고, 1000명의 교수도 진흙으로 바뀐다.”라고 적고 있다. 그 편지에 “나는 나의 글을 통해 자신의 이름이 백 대까지 전해지기를 바라는 야심가일세.”라는 거창한 포부가 담겨 있다. 그는 일본이 서양으로부터 수입한 근대 문명을 통해 나라의 독립을 지킬 수 있었지만, 서양에 의한 정신적인 ‘침식’을 감수하는 그 대가(代價)를 지불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일본인들인 서양의 문명에서 벗어나 각자의 개성과 자아를 확립하는 진정한 개인주의를 체득하는 것이 자신의 과제로 보았다.

皇國臣民을 내면화한 『마음』 읽기

이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선생님과 나’, 2부: 부모님과 나’, 3부: 선생님과 유서’ 이렇게 3부이다. 1부에서 3부까지 글 전체가 ‘나’의 수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3부는 전체 분량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선생님의 유서를 그대로 소개한다.

줄거리는 화자인 ‘나’는 가마쿠라의 해수욕장에서 ‘선생’을 처음 만난다. 당시 서양인과 함께였던 선생에게 막연한 호기심을 가지게 된 ‘나’는 도쿄에 돌아와서 자주 선생 집을 찾게 된다. 선생은 이렇다 할 직업도 없이, 사교도 멀리하며, 아름다운 아내와 둘만의 단출한 삶을 꾸리고 있다.

특이한 점은 매달 정해진 날짜에 도쿄의 조시가야 묘지에 성묘를 간다는 것이다. 누구의 묘인지 물어도 그냥 ‘친구의 무덤’이라고만 대답한다. 선생이 때마침 외출했을 때 ‘나’는 부인으로부터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지금의 선생이 “학생이었을 때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지만 선생의 부인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한다. ‘나’는 선생의 과거가 궁금해져 넌지시 선생에게 물어보지만, 선생은 “때가 되면 다 이야기하겠노라”라고 즉답을 회피한다.

대학 졸업과 함께 고향에 돌아가자 병상에 누워 있던 아버지는 생각보다 건강해진 상태였는데, 메이지 천황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는 병세가 갑작스레 악화된다. 이윽고 위독한 상태가 되어 친척, 친지들에게 연락을 취해야 하는 와중에 선생으로부터 두툼한 편지가 배달된다. 편지에는 자살을 암시하는 문장이 들어 있었고, ‘나’는 서둘러 열차를 타고 기차 안에서 선생의 편지를 읽는다.

선생의 편지는 유서였다. 그리고 선생의 과거가 소상히 적혀 있었다. 스무 살도 안 되어 부모와 사별한 선생은 후견인으로 믿었던 작은 아버지에게 부모의 유산을 빼앗기고 인간을 불신하게 되었다. 홀로 도쿄의 주택가에 하숙을 잡았다. 하숙집 주인은 전사한 남편 사이에서 낳은 외동딸과 살고 있었는데, 선생은 딸에게 막연한 감정을 갖게 된다. 그 무렵, 같은 고향 출신이면서 대학의 동급생인 친구 K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선생의 하숙으로 들어오게 한다. K는 의학을 공부하라는 집안의 뜻에 반해 문과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경제적 지원이 끊겼다. 하숙집에 입주한 K는 점차 아가씨와 친해졌고, 선생은 이에 질투심을 느낀다.

그러다가 어느 날, K에게서 아가씨를 사랑하고 있다는 고백을 들은 선생은 본능적으로 K의 연정을 포기시키고자 “정신적으로 향상심이 없는 인간은 쓰레기다.”라고 내뱉는다. 그러고는 하숙집 주인인 ‘미망인’에게 따로 찾아가 아가씨와의 결혼 약속을 받아낸다. 이것을 알게 된 K는 그날 밤 자살을 한다. 선생에게 보내는 유서에는 원망 섞인 말 대신 “의지와 실천력이 박약해서 도저히 살아갈 희망이 없다.”라고 적혀 있었고 선생이 베풀어 준 후의에 감사를 표하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그 후 아가씨와 결혼한 선생은 K의 자살 원인에 대해 아내에게는 함구한 채, 심한 죄의식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즉 선생의 결혼 생활은 죽은 것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결심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리고 메이지 천황의 병사 소식과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 육군 대장의 할복 자결 보도를 접하고는 ‘메이지 정신에 따라 순사(殉死) 한다’라는 생각으로 자살을 결심한다. 편지의 마지막 문구는 “내가 죽은 다음에라도 아내가 살아 있는 이상은 자네에게만 고백한 나의 비밀로서 가슴 깊숙이 묻어 두게나.”라고 맺어 있었다.

세상-가르치는 텍스트로의 『마음』

『마음』은 무겁고 어두운 작품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상적 맥락에서 보면 이 소설은 그의 다른 어느 소설보다도 ‘낡은’ 느낌을 준다. 여기서 사용한 ‘낡다’라는 말의 의미는 ‘구습에 가까운, 전통을 중시하는’이라는 것에서부터 ‘시대착오적’이라는 맥락까지 포함한다. 이 소설은 ‘국가’와 ‘국민’을 환기하는 설명이 다수 내포된 작품이기도 하다. 실제로 『마음』에 등장하는 ‘메이지의 정신’이나, 가족과 고향에 대한 애착 등의 표현은 ‘정신 공동체’로서의 일본을 상상하게 한다.

『마음』은 삼각관계 구도를 가진 소세키의 여러 소설 가운데 과도할 정도로 금욕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완전히 육체의 냄새를 풍기지” 않은 사랑, “종교심”에 가까운 사랑에 대해 말하는 ‘선생’에게 있어 육체는 욕망이 깃드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단지 정신의 그릇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정신(魂)과 육체의 이원론적 구조는 이 소설 첫 부분에 이미 나와 있다. ‘나’가 가마쿠라의 바닷가에서 처음 ‘선생’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선생이 혼자서 서양인을 데리고 있었기 때문”인데, 데려온 서양인이 “달랑 팬티 하나 외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고” “아름다운 하얀 피부”를 사람들 앞에 드러내고 있었다. 육체를 노출한 서양인의 “생경한” 모습은 “몸통과 팔뚝이나 허벅지를 내놓지 않고” “몸을 꽁꽁 감춘 듯”한 ‘선생’을 포함한 일반 해수욕객들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선생의 유서’에 전개되는 유교, 혹은 무사도(武士道) 정신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 복선이라 생각할 수 있다. 결국, 서양인과 ‘선생’의 대조적인 모습은 육체와 정신이라는 이원론, 나아가 서양의 물질문명과 일본의 정신문화라는 화혼양재적(和魂洋才的) 문화 이데올로기로 부각된다.

『마음』에서 정신주의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무사도 윤리이다. 실제 노기 마레스케와 K, 그리고 ‘선생’의 죽음은 무사도 윤리의 체현으로서의 자살이라는 맥락으로 수렴된다. 소세키는 “무사도가 퇴폐하여 배금도가 되고 말았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나쓰메 자신도 무사도를 서양 문명에 대항할 수 있는 일본 고유의 정신 윤리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음』이라는 텍스트는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는 ‘개인의 마음’과 메이지 시대를 살아온 ‘신민의 마음’이라는 두 가지 차원을 다룬다. 여기에 ‘마음’의 이야기가 중첩되어 중층 구조를 이루고 있다. 『마음』은 단지 읽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텍스트이다. 국가와 국민을 상상하여 정신주의 윤리를 내세우는 『마음』은 여러 교육 현장에서 ‘견실한’ 국민을 양성하기 위한 수신서로서 꾸준히 읽혀 왔다. ‘정진’, ‘자활’, ‘맹진’, ‘금욕’, ‘도의’, ‘향상심’, 이들은 ‘선생의 유서’ 속에서 K의 성격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말인데, 이것은 근대화 속에서 일본 사회가 당대의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요구하던 정신 윤리의 덕목과도 일치한다.

인간―‘신민의 마음’

『마음』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독자는 이야기 전개에 따라 다섯의 죽음과 대면하게 된다. 시간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천황의 병사(病死), 노기 대장의 자살(殉死), ‘선생’의 자살, 그리고 부친의 병사이고,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K의 자살이 있다. 그런데 이 중 천황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기 대장의 경우 충군애국의 실천을 위해 순사하는 것이고, ‘선생’은 죄의식 끝에 자살한 것이다. 한편 부친은 병사이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의 죽음은 각각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죽음이라는 물리적 현상에 역사와 국가에 대한 관념이 개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메이지 천황의 죽음은 적어도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에는 신민 의식뿐만 아니라 국가와 시대에 대한 일체감을 균질하게 조성한다. 아울러 천황의 죽음은 ‘메이지의 정신’이라는 국가적 이념으로 표상된다.

죽음은 국가와 개인을 일체화하는 특권적인 모티프(motif)로서 작품 세계에 편재해 있다. 노기 대장을 따라 순사 하고 싶다는 부친, “폐하의 병과 부친의 병을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는 모친뿐만 아니라, 메이지 천황과 노기 대장의 뒤를 이어 죽음을 선택하는 ‘선생’에게서 이미 죽음은 정치화되어 있다. 주군에 대한 충성을 다하기 위해 순사한 노기의 경우는 차치하고서라도 시골의 보통 사람으로 살아온 부친, 그리고 사회로부터 고립해 생활하던 ‘선생’조차도 모두 동일한 (메이지에 대한) 시대 인식을 가진 것이다.

이 세 사람을 하나로 묶는 것은 메이지 천황의 죽음이다. 그리고 그들은 죽음을 통해 시대와 국가에 참여하는 개인들이기도 하다. 천황의 병상이나 붕어(崩御)를 알리는 신문 기사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 그리고 나의 부모와 ‘선생’은 사회적 지위나 교양, 성별이나 세대가 다르지만, 국가와 시대에 대한 귀속 의식을 가진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신민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결국, 걱정하는 표정으로 신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각 개인의 ‘마음’ 속에 바로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작가는 ‘선생’의 죽음을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 수렴하는 것을 거부한다. “내가 순사 한다면 그것은 메이지의 정신에 순사하는 것”이라는 ‘선생’의 발언은 개인의 자살을 ‘순사’라고 하는 공적 죽음으로 치환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더군다나 ‘선생’의 자살 결심이 노기 대장의 순사 직후에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노기 대장과 ‘선생’의 ‘의지적’인 죽음이 메이지 천황의 서거에 연동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궁금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마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레브’(לב)는 심장이란 뜻이다. 단순히 신체기관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감정이 위치하는 가장 깊은 내면세계를 의미한다. 마음은 그 자체로서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다(잠 4:4). 사람의 모든 생각, 욕망, 말, 행동들은 그의 내부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온다. 그런데도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렘 17:9). 사람이 자기 자신의 방식대로 행하기를 계속할 때, 그의 '마음'은 점점 더 완고해진다.

작가의 사상은 작품에 반영된다. 작가로서의 명성을 획득한 나쓰메는 일본 제국의 대외 팽창의 현장인 만주와 한국을 여행하고 귀국 후 《아사히신문》과 만철(滿鐵)의 기관지에 기고한 여행 소감에서 이렇게 적었다(『만주와 한국 여행기』, 소명출판). “이번 시찰 여행에서 또 하나 느낀 것은 내가 다행스럽게도 일본인으로 태어났다는 자각을 얻은 점이다. 나는 지나인(중국 국적을 가진 한족)이나 조선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주와 조선에 건너온 나의 동포가 문명 사업의 각 방면에서 활약하여 매우 우월한 존재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일본인도 매우 믿음직한 인종이라는 인상이 머릿속 깊이 각인되었다.”

근대로의 전환점에 있어서 유럽에 대해 결정적인 열등의식을 지녔던 일본은 자신들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맹렬하게 유럽을 뒤쫓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은 자신이 노예의 주인이 됨으로써 노예에게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것이 나쓰메 소세키가 가진 마음이 아니었을까?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것은 1909년 10월 26일. 나쓰메 소세키와 안중근은 한 달 간격으로 하얼빈역을 다녀간 두 사람의 마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쓰메 소세키에게 보인 731부대의 잔학으로 3000명의 희생된 ‘마루타’는 우월한 존재가 했던 문명 사업의 일종인가? 꽃다운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조국 잃은 소녀들. 가해자 일본 정부는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는데, 그가 말한 자긍심을 느끼는 믿음직한 인종(일본인)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인간 존엄성이 증발한 비서구 사회의 근대성은 그 자체로 의미가 없다. 근대성이 합리성을 추구하더라도 비인간적인 가치는 인간 세계에서 환영을 받을 수 없다. 사회가 급변하여 현대사회는 탈근대화로 규정되고 있다. 서구 사회가 근대성을 벗어날 때면 비서구 사회는 사회발전의 동력이 될 만한 자아도 잃게 되고, 따라잡을 대상도 사라지게 되어 방황하게 될 것이다. 성장주의나 민족주의가 변형되어 나타난 비인간적인 전체주의에 잡아먹힐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비서구 사회의 근대성이 보여줄 마지막 비극이다.

이상욱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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