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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 내 인생의 전환점(12)

기사승인 2018.09.20  19: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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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명섭(노래하는 목수)

        노래하는 목수 신명섭

안은소를 떠나 산지 1년 되던 어느 날, 안은소 통나무집에서 살고 있는 K로부터 연락이 왔다.

“형. 우리 집 뒤에 있는 땅 주인과 연락이 됐는데 땅 팔겠대요~~.”

그 땅은 몇 년 전에 마산의 어떤 사람이 안은소로 오고 싶다며 샀던 땅인데 다른 곳으로 가게 되어 땅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안은소를 떠난 뒤 영 마음이 불편했다는 K가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마침 시의적절하게 땅주인과 연결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로 인해 안은소에 들어와 아이 셋을 낳아 살고 있는 그가, 우리를 다시 안은소로 불러들이는 셈이다. 전에 살던 집 바로 옆이어서 위치도 마음에 들었다. 등기를 마치고 집 지을 준비를 시작했다. 지목이 대지여서 바로 토목공사부터 시작했다.

나이 사십에 내 집 짓기를 목표로 시작했던 목수 일, 2012년 3월에 드디어 그 꿈을 실현하게 되었다. 나와 아내 그리고 아들, 이렇게 셋이 짓기 시작한 안은소 우리 집. 그동안 지었던 집들을 참고해서 우리가 원하는 모양과 공간 구성으로 지어갔다.

처음엔 본채와 작업장을 나눠 지을 생각이었는데 30분 넘는 거리를 매일 출퇴근하며 일을 하자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듯해서 일단 작업장을 먼저 짓기로 했다. 그런 후에 이사 와서 본채를 짓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작업장을 지었는데, 2층 건물에 절반은 작업장 절반은 생활공간으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지은 집들은 대부분 전형적인 전원주택들로 지붕이 복잡한 형태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 집은 오히려 아주 단순하지만 개성이 느껴지는 형태로 지었다. 설계를 하고 드디어 착공, 토목 공사만도 며칠이 걸렸다.

기초 공사 후 구조공사까지 하고났을 때 용인에 지어주었던 집 옆집에 사는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을 리모델링해야 하는데 우리에게 맡기고 싶다 했다. 마침 공사비가 좀 더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 이렇게 집을 짓다가 돈이 떨어질 때쯤 되면 신기하게도 일이 생겼다.

한두 달 가서 일해주고 벌어온 돈으로 또 집을 짓고... .아내와 아들까지 온 가족이 함께 다니며 일을 하니 여러 가지로 좋은 점이 많았다. 우선 깊은 산 속에 아내만 두고 떠날 때마다 느꼈던 별리(別離)의 안타까움과 걱정이 없어졌고 주말마다 오가며 길에 뿌리던 돈과 시간도 절약하게 되었다.

신명섭은 자신이 잘 집을 직접 지었다. 가족에게 가장 맞는 공간으로 꾸밀 수 있어서 좋았다.

또 조공 한 사람의 역할을 아내가 대신하면서 소득도 늘고... . 그렇게 6개월여에 걸쳐 건물을 완성하고 내부 공사까지 마친 뒤 그 해 9월에 안은소로 복귀했다. 감회가 정말 새로웠다. 안은소에서 사는 동안 느꼈던 평안함은 떠나보니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인연 터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우리에게는 안은소가 인연 터였던 것 같다. 서울에서 수원, 수원에서 순천, 순천에서 통영, 통영에서 고흥, 고흥에서 상주로... .평생 떠돌아다닐 것 같았던 우리의 여정은 상주 화동면 어느 산자락에 있는 안은소라는 곳을 터전으로 17년 넘도록 머물러 있다. 그것이 쉼표가 될지 마침표가 될지는 우리도 모른다.

그렇게 일단 작업장을 짓고 막상 들어와 살게 되니 살아가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같이 살던 아들은 곧 직장을 구해 서울로 갔다.

“원래 대학 졸업자를 구하는 곳이었어요. 회사가 마음에 들어서 이력서 하고 자기 소개서를 보내봤는데...”

아들은 제천 간디 중학교를 나왔지만 학력인정이 안되어 검정고시로 중졸과 고졸 학력을 취득했다. 그 후 농사일과 목수 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영국의 에머슨 칼리지에서 2개월쯤 게스트로 지내고 왔다. 그 후 에머슨이 마음에 든다며 그곳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엄격한 비자 심사에 떨어져 아일랜드에 가서 1년간 어학연수를 하고 왔다.

즉 공인된 학력은 전무한 상태인 셈이었다. 그런데 ... . 아들이 보낸 자기 소개서를 읽어본 회사 대표가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독특한 이력을 사진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다며 직접 전화해서 면접 보러 오라 했다는 것이다.

다음 날 서울로 올라갔는데... . 무려 6시간 동안 대표와 시간을 보내며 저녁 식사에 술까지 한 잔 하고 다음 날 직원 야유회 행사에 같이 가기로 했다며 연락을 해왔다. 그렇게 아들은 독립해서 서울로 올라가고 은소에는 우리만 남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 우리의 처음 계획도 달라졌다. 아내와 단 둘이 사는데 특별히 필요한 뭔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 생활 동선이 일정하니 30평도 우리에겐 너무 컸다. 그런 지경인데 굳이 본채를 지어야할까 싶어진 것이다. 아내 역시 나와 다르지 않아 더 이상의 공사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건물을 작업장 용도로 지었기 때문에 일반 가정집과는 좀 다른 느낌이 있었는데 오히려 나름 운치 있고 좋았다. 산 속의 카페 같은 느낌도 들어서 식탁에 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차 한 잔 하노라면 마음이 참 편안해졌다.

건축일이 있으면 나가서 돈 벌고 없을 때는 텃밭 농사와 주변 풀베기와 겨울용 장작 준비 등으로 낮 시간을 보냈다. 어스름 저녁이 되면 씻고 식탁 창가에 앉아 기타 치며 노래를 만들거나 부르고, 아내는 요리를 하거나 책을 보거나 했다. 그렇게 바쁜 듯 한가하게 몇 해를 보냈는데....

2016년 다시 안은소를 떠나야 하는 일이 생겼으니 아내가 정토회 상주 법당의 총무 소임을 맡아 법당에 매일 출퇴근하게 된 것이다 결국 안은소를 나와 상주 시내에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처음엔 시내에 전세를 얻으려 했는데 전세가 거의 없는데다 값에 비해 집이 너무 엉망이어서 고민하던 중 전세가격이면 살 수 있는 집이 나와서 부동산 중개소에 가 보았다. 지어진지 40년 된 시멘트 블록 집이었는데 일단 구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지붕 한 쪽에 비가 샌 흔적이 있고 나머지는 괜찮았다. 이 정도면 리모델링해서 살 만 하겠다 싶었다.

매매 계약을 하고 설계사무소에 증축허가 신청을 맡겼다. 시내 지역이어서 소방법과 관련하여 약간 복잡한 절차에 애를 좀 먹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6개월 만에 공사를 마치고 이사할 수 있었다. 막상 시내에서 살게 되니 나이 탓인가 처음에는 주인을 잃은 안은소 집을 팔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우리도 정이 많이 들었지만 아들 내외에게도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팔지 않기로 했다. 며느리가 안은소에서 아이를 가졌는데 그날 꿈에 안은소 당산나무 밑에 세 할머니가 앉아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나~~^^ 꿈 얘기는 그렇다쳐도 우리 손녀를 가진 곳이라니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우리만의 컨셉이 아니라 누가 와도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리모델링을 해서 공간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빌려주기로 했다. 공사가 잘 끝나서 인연 있는 이들에게 몸과 마음의 쉼터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함께 인생도 나누고 노래도 나누면서... (계속 이어짐).

신명섭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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